| 한자 | 裵致雲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작쟁의 지휘|중국 공산당 탕원현(湯源縣) 농민협회 주석|항일 화장선전대(抗日化裝宣傳隊)|중국 공산당 탕원중심현위원회 서기|항조항세(抗租抗稅)투쟁 지도 |
| 출생 시기/일시 | 1893년 |
| 수학 시기/일시 | 1928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8월 |
| 몰년 시기/일시 | 1933년 8월 16일 |
|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
| 거주|이주지 | 요령성 심양 |
| 거주|이주지 | 흑룡강성 탕원현 오동하 |
| 학교|수학지 | 흑룡강성 탕원현 |
| 활동지 | 흑룡강성 탕원현 |
| 활동지 | 흑룡강성 탕원현 |
| 활동지 | 양자하, 흑금하 |
| 활동지 | 탕원구, 압단하구, 칠호둔 |
| 활동지 | 탕원현 |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배치운은 중국 공산당 탕원중심현위윈회 서기로서 소작료와 조세율 인하를 위한 농민쟁의 등을 지휘하였다.
배치운은 1893년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배치운은 어려서 서당에서 글을 배웠다. 일제의 조선 강탈 이후 1920년 만주(滿洲)심양(瀋陽)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길림성(吉林省)공주령(公主嶺)에서 1924년부터 소작농민생활을 하였다. 길림성 오동하(梧桐河)로 거주지를 옮기고 화전농민생활을 하였다.
배치운은 농민협회조직 참여하여 회장직을 맡았으며 1928년 최용건(崔庸健)의 주도로 열린 야학에서 공부하였다. 1929년 초가을 농민들의 소작료와 조세율 인하등 소작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소작쟁의를 지휘하였고 1930년 중국 공산당 입당하고 탕원현(湯源縣) 농민 협회 주석이 되었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자 배치운은 항일 화장 선전대(抗日化裝宣傳隊)를 조직하여 양자하(亮子河)와 흑금하(黑金河) 지역의 금광과 농촌지역 등을 순회하며 항일 연극 공연을 하였고 1932년 중국 공산당 탕원중심현위원회 서기가 되어 탕원구·압단하구(鴨蛋河區)·격절하구(格節河區) 등에서 당조직을 결성하였다. 같은 해 가을 추수를 끝낸 후 칠호둔(七戶屯) 지역에서 농민들의 항조항세(抗租抗稅)투쟁을 지도했다.
나아가 배치운은 탕원 서북구지역에 반일 유격 근거지 수립을 위하여 1933년 8월 농민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8월 16일 학립강(鶴立崗)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탕원중심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였다가 이원섭(李元燮)의 밀고로 인하여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10월 14일 동지 12명과 함께 생매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