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鳳善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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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 |
| 대표경력 | 광복단 징모대장(徵募隊長)|군자금모금활동 |
| 출생 시기/일시 | 1885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 활동시기/일시 | 1920년 |
|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 출생지 | 강원도 회양 |
| 거주|이주지 | 길림성 화룡현 |
| 활동지 | 화룡현 사대사(四對社) 서래동 |
일제 강점기 만주·노령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원도 회양(淮陽) 사람이다.
이봉선은 1885년 출생하였다. 만주·노령지방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이봉선은 구국의 뜻을 두고 중국으로 건너가 1920년 이범윤(李範允)의 주도하에 조직되어 대한제국 황실을 존중하고 있던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봉선은 광복단에서 징모대장(徵募隊長)이 되어, 화룡현(和龍縣) 사대사(四對社) 서래동(西來洞)에서 40여 명의 주민들을 광복단에 가입시켰고 조학림(曺學林)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1920년 7월 29일 사대사의 남호기(南湖基)·나순종(羅淳鍾)의 집에 이르러 독립자금 240원을 모금하였다.
1920년 8월 2일에는 북간도용정(龍井)에서 밀정으로 추정되는 일본인 우치다(內田敏治)가 귀국을 위하여 함경북도 회령으로 향할 때 이봉선은 차정극(車正極)과 함께 그를 암살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이봉선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1921년 4월 15일 함흥 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