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桂荀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사회주의계열의 여성독립운동가 |
|---|---|
| 성별 | 여 |
| 대표경력 | 중국 공산당 당원|동북 항일 연군제6사 제8단 특별반 대원 |
| 출생 시기/일시 | 191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 활동시기/일시 | 1930년~1931년 |
| 활동시기/일시 | 1932년 8월 |
| 활동시기/일시 | 1935년 8월 |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1월 |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30년 |
| 출생지 |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
| 거주|이주지 | 길림성 안도현 |
| 학교|수학지 | 길림성 화룡현 |
| 활동지 | 길림성 화룡현 일대 |
| 활동지 | 길림성 화룡현 |
| 활동지 | 길림성 화룡현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 독립운동가.
이계순은 중국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덕신구(德新溝) 금곡촌(金谷村) 출신이다.
이계순은 동북지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한 여성으로 중국 공산당 화룡현(和龍縣)위원회 부장 김일환(金日煥)이 남편이다.
이계순은 1928년 원동소학교(遠東小學校)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중 반일 대중단체인 공산주의 아동단 단원이 되어 통신연락활동을 하였다. 이후 일본군에 의해 학교가 불타 버리자 야학에서 공부하였다.
1930년 5월 이계순은 화룡현 덕신구(德新溝) 금곡촌(金谷村)에서 여성조직화 활동에 종사하였다. 이후 1931년 항일 유격 근거지인 화룡현 어랑촌(漁浪村)으로 거주지를 옮겨 부녀회·소년선봉대·아동단 활동에 참가하였다.
이계순은 1932년 8월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일제의 어랑촌 토벌작전에 맞서 유격대 후원 사업에 종사하였다. 1933년 결혼 후 김일환과 함께 길림성 연길현(延吉縣)용정촌(龍井村)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같은 해 11월 남편과 함께 길림성 안도현(安圖縣) 차창자(車廠子)에서 이주하여 활동하였다.
이계순은 1934년 가을 민생단원 혐의를 받아 남편이 죽고, 본인 또한 고초를 겪었다. 1935년 8월 항일 유격 근거지인 안도현 차창자에서 낳은 딸과 시어머니와 함께 차창자 서남골로 거주지를 옮긴 후 반일자위대 결성에 참여하였고 동북항일연군 제6사 제8단 특별반 대원으로 입대하였다.
이계순은 1937년 겨울 동상에 걸려 홍두산(紅頭山) 임시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12월 일본군 토벌대에게 체포되어 장백현(長白縣) 감옥에서 복역하다 1938년 1월 총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