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희

한자 尹俊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영신 학교(永新學校) 교사|북로 군정서 특파대장|철혈 광복단 조직
출생 시기/일시 1892년 12월 26일
수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몰년 시기/일시 1921년 8월 25일
추모 시기/일시 1963년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20년
출생지 함경북도 회령
거주|이주지 북간도
활동지 용정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노령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서전 서숙 출신으로 북로 군정서에서 특파대장으로 활동하였고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조선 은행 회령 지점의 송금 탈취를 실행하였다.

가계

함경북도 회령(會寧) 출신이다.

활동 사항

만주·노령 방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이명으로 준희(儁熙)를 사용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을 결심하고 만주로 건너가 서전 서숙(瑞甸書塾)에 입학하였다.

이후 용정(龍井)의 영신 학교(永新學校)에서 근무하다가 한상호(韓相浩)·임국정(林國楨) 등과 항일 단체인 철혈 광복단(鐵血光復團)을 조직,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7월에는 북로 군정서(北路軍政署) 특파대장이 되어 조선 은행 회령 지점의 행원인 전홍섭(全弘燮)을 포섭하고 박웅세(朴雄世)와 김준(金俊)을 새로운 동지로 맞아들여 한상호·임국정·최봉설 등과 같이 조선 은행 회령 지점에서 송금하는 15만원을 탈취하는 계획은 세운다. 이후 간도 용정(龍井)으로 이송중인 현금 15만원을 화룡현(和龍縣) 동양리(東陽里)에서 호송하는 일본 경찰을 사살하고 탈취하였다.

동년 12월 일제의 첩자인 엄인섭(嚴仁燮)의 밀고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상호·임국정 등과 함께 체포되어 1921년 4월 4일 고등 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1921년 8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임국정·한상호와 함께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騎驢隨筆)』(국사 편찬 위원회, 1955)
  • 김승학,『한국 독립사』하 (독립 문화사, 1965)
  • 『독립운동사 자료집』11, (국가 보훈처, 1970~1978)
  • 김정명, 『명치 백년사 총서』1(原書房, 1980)
  • 김정명, 『명치 백년사 총서』3(原書房, 1980)
  • 『대한민국 독립 유공자 인물록』4 (국가 보훈처, 1987)
  • 박청산, 『내고향 연변』(연변인민출판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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