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경

한자 玄正卿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대한 통의부 법무위원장|정의부|중앙위원회|민족 해방 동맹 주석
출생 시기/일시 1886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2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활동 시기/일시 1928년
활동 시기/일시 1940년
몰년 시기/일시 1941년
추모 시기/일시 1992년
출생지 평안북도 박천
활동지 관전현 향로구
활동지 봉천성 환인현
활동지 길림성 유하현
활동지 요령성 신빈현
활동지 중경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현정경의 본명은 병근(炳瑾)이며, 호는 하죽(河竹)이다. 평안북도 박천 출생으로,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만주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 한족회(韓族會)서로 군정서(西路軍政署)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활동 사항

현정경은 1920년 광한단(光韓團)을 조직했다. 위원장으로 활동했는데, 무기를 구입하고 동지 50여 명을 규합했다. 이후 현정경은 1922년 대한통의부의 법무위원장이 되었다. 통의부(統義府)는 발족될 때까지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1922년 8월 한족회, 광복군 총영, 대한 독립단, 서로 군정서, 광한단, 대한 청년단 연합회 등 독립운동 단체 대표가 모여서 봉천성 환인현(奉天省桓仁縣)에서 이 조직을 통해 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1925년 1월 현정경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여 중앙위원회에 선임되었다. 길림(吉林)에서 양기탁(梁起鐸)·김동삼(金東三)·오동진(吳東振)·지청천(池靑天) 등과 조직했다. 1926년 고려 혁명당(高麗革命黨) 조직에도 가담했다. 그리고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그 뒤 국민부(國民府)가 결성될 때 법무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정의부, 신민부(新民府), 육군 주만 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등의 3부 통합이 실패하자, 1928년 5월 신안둔(新安屯)에서 조직을 결성했다.

현정경은 1930년 공산주의자로 전향했다. 이후 국민부 개조를 시도했으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충칭(重慶)으로 탈출했다. 이후 그곳에서 1940년 김성숙(金星淑) 등과 민족 해방 동맹(民族解放同盟)을 결성, 주석에 취임했다. 그리고 치장(綦江)에서 독립운동 단체를 이동녕(李東寧)의 주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집결시키는데 진력,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朝鮮獨立運動』Ⅰ·Ⅱ (金正明 編, 原書房, 1967)
  • 김준엽김창순 공저 『한국공산 주의 운동사』1∼5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6∼1970)
  • 박성수, 『독립운동사연구』(창작과비평사, 1980)
  • 박영석, 『재만한인독립운동사연구』(일조각, 1988)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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