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吳貞俊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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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 |
| 대표경력 | 김두화락야소교회 설립|대한통군부 |
| 출생 시기/일시 | 미상 |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대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 몰년 시기/일시 | 1923년 |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 거주|이주지 | 길림성 통화현 |
| 활동지 | 길림성 통화현 |
| 활동지 | 길림성 집안현, 화룡현 삼도구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기독교계 독립운동가.
오정준은 1911년 길림성 통화현에서 김두화락 야소교회(金斗伙洛耶蘇敎會)를 설립하였으며, 1923년경 집안현(輯安縣)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오정준은 1911년 서간도 지역인 길림성(吉林省) 통화현(通化縣)으로 이주하였다. 같은 기독교인이었던 박응서(朴應瑞), 정락영(鄭洛永) 등과 함께 동포들에게 전도하면서 김두화락야소교회(金斗伙洛耶蘇敎會)를 설립하였다. 이 교회는 3·1 운동당시 만주지역에서 첫 봉화를 올린 곳으로도 유명한 교회이다.
1923년 남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서로 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벽창의용대(碧昌義勇隊)·광복군 총영(光復軍總營)·광한단(光韓團)·보합단(輔合團) 등이 회의를 거듭하여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가 조직될 당시 오정준은 집안현(輯安縣)에서 김병호(金秉浩)·김양무(金養武) 등과 함께 재만동포들의 지지 하에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태화보(泰和堡) 삼도구(三道溝), 대흥구(大興溝)에 거주하고 있던 동포 김여준(金呂俊)과 그의 아들 3인이 평북 삭주군(朔州郡)에 있는 일본 경찰에 밀고하고, 일경 백정(白井) 외 1명과 그를 따르는 자 8명을 인도하여 동현 삼도구에 침입, 오정준 등 독립운동가 4인을 체포하게 하였다. 이에 오정준은 일경에 의해 나선도·김병호 등과 함께 압송되던 중 압록강에서 投身 自殺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주변의 주민들이 모두 공포에 떨게 되자, 이 지역 독립운동 단체의 소대장 서리 모(某)씨가 이 소식을 듣고 참사(參士) 몇 명을 급히 파견하여 민심을 달래고자 하는 한편 밀고자들과 친일파 김원현(金元鉉) 등을 체포하여 재만동포들과 중국 농민들이 보는 가운데 그 죄목을 열거하고 사형에 처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