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白鍾烈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만주 지방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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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 |
| 대표경력 | 북로군정서 교관 |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7월 10일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10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 출생지 | 경기도 장단(長湍) |
| 거주|이주지 | 중동현(中東縣) 이도하자(二道河子) |
| 학교|수학지 | 유하현 고산자가 |
| 활동지 | 길림성 화룡현 일대 |
| 활동지 | 소안분 |
| 활동지 | 목능현(穆陵縣) 소추풍(小秋風)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경기도 장단(長湍) 사람이다.
호는 혜원(惠園)으로 1917년 2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흥 무관 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고 한족회에 가담하였다.
항일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북로 군정서에 사관 연성소(士官練成所)가 설립되자 교관으로 오상세(吳祥世)·박영희(朴寧熙)·김춘식(金春植)·강화린(姜化麟)·최해(崔海)·이운강(李雲崗) 등과 함께 독립군 훈련을 담당하였다.
1920년 10월에는 이민화(李敏華)·김훈(金勳)·한건원(韓建源) 등과 같이 종군 장교로서 청산리 전투에 참여하여 대승리를 거두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1923년 10월 만주 소안분(小綏芬)에서 조직된 군사 연합 회의 준비회(軍事聯合會議準備會) 산하 대표 심사 위원부(代表審査委員部)의 부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5년에는 북만주에서 조직된 신민부(新民府)의 제1 대대장으로서 오상세·문우천(文宇天)·주혁(朱赫)·장종철(張宗哲)·박두희(朴斗熙) 등과 함께 항일 무장 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독립 전쟁을 위한 사관 양성을 위해 목능현(穆陵縣) 소추풍(小秋風)에 설치한 성동 사관 학교(城東士官學校)의 교관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이바지하다 1938년 중동현(中東縣) 이도하자(二道河子) 자택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넌 대통령 표창을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