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義鉉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광복단|대한 독립단 유격대원 |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
| 수학 시기/일시 | 미상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 몰년 시기/일시 | 1921년 |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 출생지 | 경상남도 울산 |
| 거주|이주지 | 만주 집안현 |
| 학교|수학지 | 한성 |
| 활동지 | 울산 |
| 묘소 |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 |
일제 강점기 만주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의현은 1897년생으로 출신지인 울산(鬱山)의 위치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오성학교(五星學校)를 다녔다. 1919년 3·1 운동 후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가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고, 광복단 활동에 진력하던 중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만주로 망명하였다.
집안현(輯安縣)으로 이동 한 후, 1919년 3·1 운동의 영향으로 서간도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조직된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유격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일본인과 친일파 처단, 일제의 기관 파괴 등 무장 활동을 전개하던 김의현은 1920년 9월, 집안현에서 체포되어 수개월간 복역하였다. 이후 함께 수감되었던 인천의 이기춘(李基春), 정주(定州)의 김서순(金西淳), 자성(慈城)의 김원호(金元浩), 개천(价川)의 김이태(金利泰) 등 22인과 함께 일본 경찰에게 인도되어 피살·순국하였다.
1995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