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容大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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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정의부 중앙 집행 위원 |
| 출생 시기/일시 | 1893년 5월 14일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4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10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192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 출생지 | 함경남도 풍산 |
| 거주|이주지 | 길림성 |
| 활동지 | 길림성 장백현 |
| 활동지 | 길림성 장백현 |
| 활동지 | 길림성 장백현 |
| 활동지 | 길림성 유하현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함남 풍산(豊山) 사람으로 이명은 용대(溶大, 瀧大)·백두산인(白頭山人)이다. 만주 대한 독립 군단에 가담하여 함경도 지역 군자금 모집과 단원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통합된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단에서 비서로 활동했고, 남부민정서 서장으로서 군수품 조달에도 힘썼다. 이탁·오동진(吳東振) 등과 함께 중앙행정위원으로 선임되어 정의부를 조직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1920년 4월 만주 장백현(長白縣)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10월 대한독립군비단이 흥업단(興業團) 등과 연합,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으로 조직되었다. 이때 비서로 선임되어 회장 김호(金虎), 부회장 이은향(李殷鄕), 총무 윤덕보(尹德甫), 의사부장 윤세복(尹世復), 서무부장 석계(石桂), 군사부장 김찬(金燦), 경호부장 한창언(韓昌彦)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2년 8월경 대한 광정단(大韓匡正團)이 조직되자 군법과장에 임명되어, 1923∼1924년간 무기를 구입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1924년 10월부터는 광정단 남부민정서장(南部民政署長)으로 함경북도 대안 지역에서 군수품 구입 등에 힘을 쏟았다. 1924년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정의부는 1924년 11월 25일 대한 통의부(大韓統義府)·서로 군정서(西路軍政署) 등 8개 단체 대표 25명이 참가한 가운데 길림(吉林)에서 조직되었다. 정의부는 조직되자 곧 헌장과 선언을 발표하고 아울러 중앙행정위원으로 이탁·오동진(吳東振)·현정경(玄正卿)·김이대(金履大)·윤덕보(尹德甫)·이진산(李震山)·김형식(金衡植)·이청천(李靑天) 등을 선임하였는데, 이때 김용대도 1925년 4월 9일 만주 길림에서 중앙행정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정의부 제3회 중앙의회가 1926년 10월 24일부터 11월 9일까지 개최되어, 헌장을 개정하고 중앙위원 11명을 증원하였다. 이때에도 김용대는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동년 11월 20일 공포된 정의부 신헌장(新憲章)에 의거하여 고활신·오동진·현익철·김동삼·이욱(李旭) 등과 함께 중앙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