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金鳳國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성천3.1만세운동|고려혁명위원회 선전부장|고려 혁명당 간부 |
| 출생 시기/일시 | 1890년 9월 20일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
| 몰년 시기/일시 | 1932년 3월 3일 |
| 추모 시기/일시 | 1968년 |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 출생지 | 평안남도 성천군 삼흥면 |
| 거주|이주지 | 만주 길림성 |
| 활동지 | 평안남도 성천 |
| 활동지 | 경성 |
| 활동지 | 길림성 |
일제 강점기 국내와 만주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봉국은 1890년 9월 20일 평안남도 성천군 삼흥면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평안남도 선천(宣川)에서 천도교 대표로 3.1 운동에 참가하여,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6개월간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 김봉국은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사망하자 그의 독립운동 노선을 계승하고 항일무장 투쟁을 위하여 이종훈(李鍾勳)·최동희(崔東曦) 등과 함께 경성에서 1922년 비밀결사인 고려 혁명 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김봉국은 일제 탄압을 피해 이동락(李東洛)과 만주로 이동하였다. 1926년 길림성에서 정의부(正義府)의 양기탁(梁起鐸)·고활신(高豁信)·현정경(玄正卿)·오동진(吳東振)·곽종대(郭鍾大) 등과 형평사의 이동구(李東求)·송헌(宋憲), 노령지역의 이규풍(李圭豊)·주진수(朱鎭洙)·최소수(崔素水) 등과 함께 고려 혁명당(高麗革命黨)을 결성하였다. 고려 혁명당에서 독립운동에 전념하던 김봉국은 1926년 1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법원에서 징역 6년을 언도받았다. 1928년 평양 복심 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아 복역하다가 1931년 12월에 출감하였다. 그러나 1932년 3월 3일, 옥고로 인한 병으로 사망하였다.
1968년에 대통령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