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묵

한자 吳秉默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서전 서숙 졸업|혼춘현 남별리 개신교 학교 교사|혼춘한민회
출생 시기/일시 1897년
수학 시기/일시 1906년
활동 시기/일시 1910년대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몰년 시기/일시 1920년
추모 시기/일시 1991년
출생지 미상
거주|이주지 길림성 연길현
학교|수학지 길림성 연길현
활동지 혼춘현 남별리
활동지 혼춘현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오병묵서전 서숙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졸업 이후에는 혼춘현에서 민족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오병묵은 1878년 태생으로 출생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1906년 오병묵은 중국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에서 교육을 통해 독립사상을 고취할 목적으로 이상설(李相卨) 등이 설립한 서전 서숙(瑞甸書塾)에 들어가 김약연(金躍淵)· 박일병(朴一秉)· 이정치(李庭馳)· 박효언(朴孝彦)· 구자익(具滋益)· 박세호(朴世豪) 등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오병묵은 혼춘현(琿春縣) 남별리 개신교 계통의 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며 구국교육을 통해 배일사상(排日思想)을 고취시켰다. 또한 혼춘 한민회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

1920년 10월 3.1 운동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점점 확대되는 항일조선독립군들의 활동을 근원적으로 봉쇄하기 위하여 대규모 정규군을 만주로 투입하기 위한 구실로 혼춘 참변(琿春慘變)을 일으켰다. 오병묵은 이에 맞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중 1920년 10월 30일 왕청(汪淸)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에서는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5(국가보훈처, 1974)
  • 梶村秀樹·姜德相 편, 『現代史資料』 28(みすす書房, 1977)
  • 金正明, 『明治百年史叢書』(原書房, 1967)
  •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9(국가보훈처, 1991)
  • 윤광수, 『세월속의 중국 조선 민족』,(연변인민출판사, 2003)
  • 『동아일보』(1958.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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