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준

한자 張德俊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언론인
성별
대표경력 동아일보 논설위원|통신부장|북경특파원|혼춘사건 취재
출생 시기/일시 1891년
활동 시기/일시 1914년
활동 시기/일시 1917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1월
몰년 시기/일시 1920년 11월
추모 시기/일시 1963년
출생지 황해도 재령
활동지 평양
활동지 일본동경
활동지 경성
활동지 만주 혼춘
정의

1920년 만주에서 일본군이 한국인을 대량 학살한 혼춘 사건을 현지에서 취재하다 최초로 순국한 한국 언론인.

개설

청년운동과 사회운동에 전력을 기울이던 장덕준은 김성수, 이상협 등과 함께 『동아 일보』를 창간하여 발기위원 겸 논설위원으로 있다가 특파원으로 중국베이징에 가서 미국 의원단의 활동을 취재하였다. 1920년 만주에서 일본군이 한국인을 대량 학살한 혼춘 사건을 현지에서 취재하다 일본인에게 암살당하였다.

가계

장덕준은 1891년에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결성(結城). 호는 추송(秋松)이다. 부친은 장붕도(鵬道)이며, 동생 덕수(德秀)는 동아일보사 초대 주간이었고, 덕진(德震)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 순사(殉死)하였다.

활동 사항

장덕준은 1914년 『平壤日日新聞』의 한국문판 주간으로 1년여 지낸 뒤,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한국 YMCA 부간사로 청년운동과 사회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장덕준은 일본어에 능숙했다. 장덕준은 일본의 데모크라시운동 제창자로 이름난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요시노(吉野作造) 교수와 친분이 두터워, 민주주의 사상과 조선의 현실 및 장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장덕준은 일본에 머물면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 연구에 힘썼다.

1919년 3·1 운동 무렵에 장덕준은 신병으로 요양 중이었는데 홋카이도(北海道)까지 가서 한국인 노무자들의 생활 실태를 살펴보고 왔다.

그 후 김준연(金俊淵)을 통해 조국에서 국문 신문이 창간되도록 노력을 기울여 1920년 4월, 마침내 김성수(金性洙)를 주주 대표로 한 『東亞日報』 창간에 참여하였다. 장덕준은 논설위원과 통신부장 겸 조사부장 등을 맡았다. 또한 장덕준은 특파원으로 중국북경(北京)에 건너가 미국의원단(議員團)의 중국 방문을 취재하는 한편 그들에게 조선의 독립요구를 알리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같은 해 10월 2일 일본군이 소위 혼춘 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한 후, 이를 구실로 만주한국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일본군 병력을 대거 파병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독립군을 공격할 뿐 아니라 한국 이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그러자 동아일보의 조사부장과 통신부장을 겸하고 있던 장덕준은 ‘신문은 정간 중에 있지만 기자의 활동은 중지할 수 없다’ 하고 일본군의 한국인 학살의 진상을 취재하기 위하여 10월 15일 서울을 출발해서 11월 6일 간도에 도착하였다. 간도 용정(龍井)에 이르러 삼성여관(三成旅館)에 투숙한 장덕준은 그곳 일본군 사령부를 찾아가 한국인 학살의 진상을 추궁하고 힐책하였다. 이에 일본군 측에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하며 후일에 함께 가보자고 약속을 하니 장덕준은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중에 일본군 측이 장덕준을 데리고 간 후부터 행방불명이 되었다.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신문(獨立新聞)」은 1921년 10월 28일자에 「장덕준씨 조난노평(張德俊氏遭難論評)」이라는 제목으로 「적의 만행을 힐책한 일로 밤중에 유출(誘出)하여 암살(暗殺)함」이라는 부제를 부치고 최근 간도로부터 돌아온 동포 유지의 말을 인용하여 그가 일본군에게 암살당한 것이 확실하다고 보도하였다. 그 요지는 일본군이 장암동(獐岩洞)에서 30여호의 한국인 주민을 한곳에 모아 방화하는 만행을 자행하였는데, 장덕준이 이 사건에 대하여 일본군 사령부를 찾아가 만행을 힐책한 즉 후에 함께 조사해 보자고 대답하고는 그날 밤에 여관에서 불러내다가 암살한 것이라고 하였다. 장덕준은 일본 식민통치하에서 최초로 순국한 한국 언론인이 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류광렬, 『기자(記者) 반세기』(서문당, 1969)
  • 한국인언론연구원 편, 『한국언론인물지』(한국신문연구소, 1981)
  • 이종하, 『11월의 모든 역사 : 한국사』(디오네, 2012)
  • 『독립신문』(1921.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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