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국

한자 任秉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대한 제국기에 활동한 의병장
성별
대표경력 안규홍(安圭洪)의진의 좌우익 부장(左右翼 副將)담당|파청 대첩(巴靑 大捷)·진산 대첩(眞山 大捷)·원봉산 대첩(圓峰山 大捷) 참가
출생 시기/일시 1882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몰년 시기/일시 1957년
추모 시기/일시 1977년
추모 시기/일시 1990년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
활동지 보성(寶城), 고흥(高興)·장흥(長興)
정의

한말 국내에서 활동한 의병장.

개설

전라남도 보성에서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전라남도 보성 출신이다.

활동 사항

이명으로는 임민호(任珉鎬)를 사용하였다. 전라남도 보성 지역의 의병 운동은 일반 민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임병국은 안규홍(安圭洪)이 의병장으로 있는 의진에 가담하여 정기찬(鄭基贊)·장재모(張載模)·송경회(宋敬會)·손덕호(孫德浩)등과 함께 좌우익 부장(左右翼副將)으로 활약하였다.

임병국은 주요 구성원들과 함께 1908년 2월 이후 파청 대첩(巴靑大捷)·진산 대첩(眞山大捷)·원봉산 대첩(圓峰山大捷)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8월에는 순천(順天)병치(竝峙)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여 전과를 올렸다. 그 후 보성에서의 의병 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고흥(高興)·장흥(長興) 등지로 옮겨 활약하였다.

1909년 7월 일본군 부석(富石) 대위가 의병의 부모 형제를 통한 회유 공작을 시행하였는데. 그로 인해 의병들은 타격을 입었다. 이에 안규홍 의진은 일단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귀향 중 의병의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체포되자 이후 이 지역에서의 의병 운동은 종식되고 말았다.

상훈과 추모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1977년에 건국 포장(建國褒章), 1990년에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안규홍, 『담산 실기(澹山 實記)』1권, (獨立 有功者 湖南 遺族會, 1954)
  • 『독립운동사』1, (국가 보훈처, 1970)
  • 『독립운동사 자료집』3,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3)
  • 『대한 민국 독립 유공자 공훈록』제1, (국가 보훈처, 1986)
  • 윤광수,『세월속의 중국 조선 민족』, (연변인민출판사, 2003)
관련항목
관련 웹사이트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