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中國 慶尙道 마을 사람들 |
|---|---|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다큐멘터리 |
|---|---|
| 양식 | 영상 구술 방식 |
| 감독 | 채재휘 |
| 공연시간 | 1.2부 각 54분 |
| 창작|발표 시기/일시 | 2011년 2월 11일, 25일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2월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3월 |
| 초연|시연장 | 대구 |
중국 동북 3성 내 경상도 마을에 살고 있는 재중 동포들의 이야기를 ‘영상 구술 방식’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2011년 대구MBC가 설날특집으로 제작한 「중국 경상도 마을 사람들」(연출 채재휘)은 중국 동북 3성(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내 경상도 마을에 살고 있는 재중 동포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 구술 방식’ 으로 그려낸 다큐멘터리이다. 한국 방송 통신 심의 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 한국 PD 연합 회의에서 수여하는 제132회 이달의 PD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는 전체 2부로 구성되어있으며, 1부 ‘영상 구술, 눈물의 이주사’와 2부‘경계에 놓인 사람들’이다. 제작진은 4개월 동안, 당시 척박한 만주 벌판에 뿌리내린 경상도 이주민의 삶을 현지 취재하고, 이들이 정착 과정에서 가슴에 묻어둔 이주사의 일단을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 이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한인 동포 사회의 현재를 방송에서 담았다.
중국 내 조선족의 수는 대략 190만 명, 그중 5분의 1가량인 약 40여 만 명이 경상도에서 이주해간 사람들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북쪽에 거주하고 있다. 경상도마을은 300여 개가 있다. 방송에서는 길림성아라디촌과 금성촌, 흑룡강성의 홍신촌 등 3개 마을을 취재하여 영상에 담았다.
길림성금성촌의 노인들은 지금도 고유의 민족 전통의 춤과 악기를 다루고 있으며, 크고 작은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고 자랑한다. 고향 사투리며 억양까지 모두가 경상도사람들인 이들에게서 지금 한국에서는 사라지고 있는 문화가 금성촌에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주민들은 선조들이 살아왔던 사연들을 풀어 놓는다. 조선인이 북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19세기말이다. 함경도 북부에 자연재해가 이어지자 굶주림을 피해 만주(청)로 삶의 터전을 확장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이후 조선인의 만주이주가 증가하면서 경상도인의 이주도 이시기에 이루어졌다. 경상도마을인 흑룡강성 홍신촌에서 만난 이주1세대인 경상도 의성출신의 장군필 할머니(90세)의 사연이나 이어지는 노인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들은 중국에 남아있는 우리의 형제에 대한 이야기요, 잊고 있었던 우리의 역사이다.
변화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경상도 사람들, 그들에게 ‘마을’이라는 울타리가 힘이 되고 있다. ‘키질’, ‘메주’, ‘장 담그기‘, ’찹쌀 떡‘ 등 우리 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도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문제는 ‘교육’기반의 붕괴이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대도시와 한국으로 나간 부모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이들은 노인이다.
중국 한인[조선족]은 현재 4세대째 유지되고 있다. 이주 1세대는 주로 일제의 탄압과 토지 수탈을 피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던 자발적 이민과 일제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국 동북 3성 지역에 정착했던 경우로 구분된다.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척박한 농토를 개간했던 1세대와 그 고난을 함께해야 했던 2세대가 있었다면, 이제는 갈수록 민족적 정체성이 희미해져가는 3세대를 거쳐 4세대가 있다. 한민족의 후예에서 중국 공민으로 살아가기까지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지금 한인[조선족] 사회가 처한 현실이다. 지금도 여전히 민족 언어, 문화, 생활 습관이 ‘동화’되고 있다.
중국 한인[조선족]의 애환과 정체성의 문제를 그들의 목소리[구술]를 통해 미시사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제작방식이 흥미롭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 중국경상도마을 노인들에게서 ‘구술’[영상 구술]을 통해 한민족의 만주 이주사의 일단을 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