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西塔街 |
|---|---|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 유형 | 지명/시설 |
| 지역 | 요령성 심양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코리아타운 |
|---|---|
| 면적 | 2.58㎢ |
| 개관|개장 시기/일시 | 1910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8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2년 |
| 최초 설립지 | 심양시 화평구 서탑가 |
| 현 소재지 | 심양시 화평구 서탑가 |
요령성 심양시 화평구에 위치한 코리아 타운.
요령성 심양시 화평구에 위치한 서탑(西塔)은 중국 내 가장 큰 규모의 코리아 타운(Korea-town)이다.
서탑가는 서탑을 남북로 가로지르는 550m의 거리를 말하지만 서탑 지구 전체를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 서탑가를 중심으로 조선족, 한국교민, 북한인이 운영하는 상가, 식당가, 유흥상가, 백화점이 있고, 상가 뒤쪽으로는 사무실과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서탑지구에 들어서면 길게 뻗은 500m의 서탑가를 사이에 두고 아리랑, 경회루, 백제원 등 한국적인 간판은 물론 평양관, 진달래, 동명관등 북한음식점이 즐비하다. 조선족 백화 상점, 풍물시장에선 조선족 동포들의 삶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조선족 동포들과 한국 사람, 북한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코리아타운’ 이자 ‘민족 융합의 장(場)’이다. 한글간판과 한국어로 소통하는 조선족동포, 한국 교민, 북한인들을 서탑가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다. 서탑의 면적은 2.58㎢에 이르며, 2013년 기준 조선족 호적인구가 8,338명, 상주 외래 인구와 한국인을 합해 2만 여 명의 한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1910년에 조선인이 서탑 일대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특히 1919년 3·1운동이후 서탑은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 근거지로 활용되었으며, 1945년 광복을 맞아 많은 조선인들이 대거 고국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서탑은 침체시기를 맞았다. 그러나 1948년 중국 정부의 민족정책에 따라 중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조선족들이 서탑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1988년 김학수에 의해 심양 코리아 타운 건설이 추진되고,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한국인들이 심양을 사업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로면서 서탑은 한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서탑은 우리말이 통하고 우리의 문화가 유지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중국에 첫발을 딛는 교민들에게 있어 심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최적의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1995년 서탑은 동북지역 조선족 용품과 한국 제품의 최대 집산지가 되었다. 2002년부터는 심양시의 대외경제투자 유치계획에 따라 심양주재 교민사회와와 한국인(상)회 등을 주축으로 ‘심양 한국주’가 서탑에서 개최되었고, 심양 한국주는 서탑 코리아타운의 한인사회의 단합과 협력을 도모하는 중요한 축제로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서탑지구는 특산품, 식당, 미용실, 사우나, 민박, 호텔, 북한식당, 학교, 병원, 백화점, 시장, 등 약 1천여 개 이상의 업소가 밀집되어 있다. 한국 관광객이 동북지역, 특히 심양을 경유할 때 반드시 들리는 곳으로, 조선족백화상점, 풍물시장에선 조선족동포들의 삶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조선족 동포들과 한국 사람, 북한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코리아타운’ 이자 ‘민족 융합의 장(場)’이다. 오늘도 한글간판과 한국어로 소통하는 조선족동포, 한국 교민, 북한인들을 서탑가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다.
한·중 수교를 계기로 한국 교민들의 진입이 본격화 되면서 동북 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으로 유입되는 한국 상품의 대부분이 심양 서탑을 거쳐 유통되고 있다. 심양과 동북지역의 한류 확산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