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中國 朝鮮族 民間 옛 寫眞集』을 통해 보는 그 時節 삶의 風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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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 지역 |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단행본 | 중국 조선족 민간 옛 사진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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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6년 4월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12월 |
| 출판사 | 하얼빈시 도리구 안정가 225호 |
| 출판사 | 요령성 심양시 화평구 십일위로 25호 |
요령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 조선족문화관에서 근무하는 이윤선이 20여 년간 수집한 5천여 점의 한인의 옛 사진과 문서를 정리하여 간행한 단행본
2011년 9월 요령성 무순시 무순조선족문화예술관을 찾았다. 동북 한인[조선족] 사회의 문화지킴이 조선족문화관을 찾아가는 길은 늘 설렘이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순에서는 요령성에서 한인들의 기록사진을 가장 많이 촬영해온 이윤선 사진작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윤선은 초면인 나에게도 두툼한 사진집, 『광음의 형적』을 선물했다. 중국 조선족 민간 옛 사진집, 『광음의 형적』은 2008년 12월 요령민족출판사에서 간행된 A4 크기 350쪽이었다. 사진집은 ①독사진편, ②결혼편, ③환갑편, ④군인편, ⑤교육편, ⑥문예체육편, ⑦문화대혁명편, ⑧가정편, ⑨생산노동편, ⑩기타편, ⑪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족민간옛사진 수집정리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이윤선 작가의 글도 덧붙여졌는데, 총 834장의 옛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 실제 옛 사진은 696장이고 나머지 128장은 문서와 실물사진 등이다.
『광음의 형적』은 이윤선이 만든 것이지만, 이를 기획한 사람은 심양시 조선족 기업가 협회길경갑 회장이다. 그는 2012년부터 심양시 조선족 연의회 회장직도 수행중인데, 문화와 기업의 결합이라는 ‘심양현상’의 주인공이다. 길경갑은 2004년 해외 한민족 연구소가 제정한 제1회 한민족 청년상 수상자로 한국 사회가 한인[조선족]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기업과 문화, 기업과 사회의 공존을 도모하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라는 심양현상을 솔선수범 실천한 기업인인데, 무순 조선족 문화예술관 직원인 이윤선 선생이 사진집을 내고자 한다고 하자 흔쾌히 쾌척하고, 책의 기획도 기꺼이 맡았다. 길경갑은 머리말에서 “『광음의 형적』에 수록된 옛 사진들은 모두 한인[조선족] 민간에서 수집한 것이다. 사진집을 출판하게 된 주요 목적은 한인[조선족] 민간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옛 사진을 발굴, 수집, 정리하여 미래의 한인 역사에 영상자료를 남기자는 것이며 또한 청소년들에게 민족전통교육을 진행하고 민족단결정신을 불러일으키며 과학적인 발전관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그 역할을 하게 하려는 데 있"다고 밝혔다. 또한 사진집이 "앞으로 민족역사자료의 일부분으로 될 수 있고 소수민족역사와 민족풍속을 연구하는데 다소나마 참고적 가치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진집은 독자들이 읽기 쉽게 하기 위하여 사진을 내용에 따라 분류해 실었다. 그러면서 “독사진, 결혼, 환갑, 군인, 교육, 문예체육, “문화대혁명”, 가정, 생산노동과 기타 등 10편으로 나뉘었으며 특히 부록에 증서, 메달 등 문서와 실물사진도 넣었는데, 옛 사진의 수집 연한은 20세기 초부터 80년대까지로 모두 흑백사진이다. 부록의 증서는 수집 연한을 넓혀 18세기 말부터 2005년까지로 했는데, 옛 사진이 696장이고 문서와 실물사진 등이 138장이다. 순서는 대체로 연대에 따라 배열했는데, 사진 설명 부분에 수집지점을 기록했다. 유감스러운 것은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촬영 연대나 장소, 인물 등이 명확하지 못한 것이 있어 사진설명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달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이윤선은 1955년 4월 요령성 무순현 전전향 대도촌에서 출생했다. 무순현 제17중학교 졸업하고 무순시순성구전전진문화소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노신미술학원 예술촬영학부를 수료했다. 그는 현재 무순시 조선족 문화관 촬영미술 담당자로 제1회 무순예술절 촬영작품 1등상, 요령성 농민촬영예술작품전 2등상, 요령성 조선족문화예술관 전문간부실무콩쿠르 촬영 1등상과 논문 1등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고, 여러 차례의 개인촬영 작품전을 가졌다. 단순히 사진촬영자로 머물지 않고 「촬영 창작에서의 식견발전문제」 등의 논문과, 『무순지역 조선족문화예술』, 『무순조선족가무』 등의 사료집, 『무순조선족문화예술관사』. 『무순조선족인재록』, 『세월과 순간』 등의 저서를 간행한 연구자이기 하다.
최근에는 요령신문의 특약기자로서 자신이 주관한 행사를 기사로 작성했다. 2014년 60세가 되는 그도 이제 후진 양성에 서두를 때라고 생각한 것이다.
무순시조선족문화예술관에서는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6명으로 구성된 촬영팀을 조직하여 야외 촬영 창작 활동을 진행하였다. 일행 6명은 무순에서 출발하여 요령성의 수중현 구문 구장성에서 시작하여 건창, 능원, 적봉, 오한기, 내만기, 통료, 창무 등 요서북지역과 내몽골지역을 답사하면서 사진촬영을 하였다. 이들이 경유한 지역은 10년에 9년은 가뭄이 들어 토끼도 오줌을 안 눈다는, 가난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메마른 땅에 먼지가 뽀얗게 일었는데 그 속에서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농민들의 힘겨운 노동 장면, 일망무제(一望無際)한 사막, 백양나무 숲속에서 풀을 뜯어먹는 양떼들, 농가의 낡은 집과 노인들… 이러한 주제들이 촬영 대상으로 되었다. 열악한 환경의 고달픈 일이었지만 참가자들은 느낀 바와 수확이 컸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사진 창작 활동은 6월에 있게 될 무순 중한 촬영작품 전람을 맞이하여 기획한 것이라고 문화관의 관계자가 밝혔다. / 이윤선 특약기자
이윤선이 한인 민간의 옛 사진을 수집하게 된 것은 1989년이다. 소중한 민간 옛 사진들을 지금 수집하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긴박감을 깊이 느낀 것이다. 우선 무순지역을 위주로 휴식일 혹은 외출 기회를 이용해 아는 사람이나 친척, 친구들을 통해 옛 사진이 있을만한 집들을 방문하면서 한 장이든 열 장이든 발견만 되면 수집하였다. 1949년 중국 건국전의 흑백사진을 위주로 수집하면서 연한을 20세기 80년대까지 늘렸다. 옛 사진을 전적으로 민간에서 보존되고 있는 것만 수집하였지 당안관이나 박물관,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것은 수집하지 않았다. 내용은 제한하지 않고 오직 한인과 관련되면 모두 수집하였다.
수집하다보니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째, 비용문제, 둘째, 시간문제, 그리고 셋째, 정보문제였다. 비용은 매달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내어 써야했고 시간 또한 직장에서 늘 허락을 받아 다닐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느 집에서 옛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고, 사진이 있다 해도 어떤 가정에서는 선뜻 내놓지 않았다. 결국 근 2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혼자서 수집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여서 주위의 친구들이나 지성인들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제1단계(1989-2005년) 작업에서는 약 16년 간 3,000여장의 수집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1,000여장을 선택하여 정리하였다. 수집 정리된 옛 사진 중 350장을 골라 사진집으로 출판할 생각으로 당시 심양시 조선족 기업가 협회길경갑 회장을 찾았다. 그는 흔쾌하게 응낙하면서 출판비용을 지불해주었다. 2006년 4월 ‘흑룡강미술출판사’에서 출판된 한인[조선족] 민간 옛 사진집 『세월과 순간』을 출판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세월과 순간』의 편집을 마친 후, 이윤선은 새로운 구상을 하였다. 『세월과 순간』은 수집범위가 좁았고 내용상 미흡한 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북 3성의 한인[조선족]을 대상으로 제2단계(2005-2007년) 작업을 시작하였다. 직장 일이 한가해진 시기를 이용해서 길림성, 흑룡강성 그리고 요령성의 노인협회, 노간부국, 문화단체, 학교의 연로한 분들을 방문하여 옛 사진과 더불어 고문서도 함께 수집했는데 약 2,000여장을 수집할 수 있었다. 마침내 20년여 간 총 5,000여장의 옛 사진과 문서를 수집할 수 있었는데 그 중 2,800여장을 선택, 정리해 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세월과 순간』의 뒤를 이어 『광음의 형적』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윤선은 처음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났지만, 점차 경험이 생기면서 노인들을 위주로 방문하였다. 옛 사진은 주로 연로한 분들이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협회나 노간부국, 아니면 조선족문화부문, 조선족학교 등의 한인[조선족]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또는 한인[조선족]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관계자나 사회에서 활약하는 분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는데 그 효과 또한 좋았다. 그가 수집한 옛 사진의 출처를 보면 군인, 교원, 간부, 회계 등 경력이 있는 노인들에게서 자료가 많이 나왔고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많이 나왔으며 지식인층의 가정이 일반 노동자나 농민 가정보다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수집 사진/문서의 보존상태는 대부분 좋지 못하였다. 사진들이 오래되어 낡은 것은 물론이고 사진액자나 앨범에 넣었다가 꺼내면서 혹은 보고 다루는 과정에서 조심하지 못하여 꺾어지거나 찢어진 것이 많았으며 심지어는 반쪽이 날아가 버린 것도 있었다. 또는 물에 젖거나 습기 때문에 누렇게 변하여 원모양을 겨우 알아볼 정도로 손상이 가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진은 아이들이 만년필 등으로 사진에 금을 긋거나 물감을 칠해놓기도 하였다. 1970년대 이후의 사진들은 상대적으로 보관상태가 괜찮은 편이었다. 결국 수집한 옛 자료들 가운데 90% 이상은 보관상태가 좋지 못해 후기 수정을 거치는데 많은 수고를 들여야 했다. 옛 자료를 수정하는 과정은 고된 노동이었다. 낮에는 시간이 없기에 대부분 밤에 작업을 진행하였다. 1,000여장의 옛 자료를 수정하고 편집하는 시간이 약 5개월이나 지속되었다. 포토샾으로 한 장 한 장씩 세심하게 수정하고 색깔을 흑백으로 환원시키면서 될수록 원래의 상태를 그대로 회복시키기에 노력하였다. 역사를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 수정 과정에서 영상의 본래 모습을 바꾸는 것은 금지하였다. 수정된 자료는 독사진, 결혼, 환갑, 군인, 교육, 문예체육, '문화대혁명', 가정, 생산노동, 기타 및 문서 등 11편으로 분류하고 연대순으로 배열하였다.
옛 사진을 통해 한인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사진의 배경, 그리고 도구, 사용품 및 문자 등을 자세히 보면 사회의 발전과 시대의 변천을 뚜렷하게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사진의 배경을 보면 옛날의 초가집들은 한인의 가옥 특색이 현저하게 드러나지만 그 후에 나타나는 기와집들부터는 한족이나 만족들의 가옥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은 한인의 가옥 문화가 중국의 가옥 문화에 접근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인의 가옥 특색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보더라도 농촌의 한인들은 대부분이 초가집에서 살았으나 70년대 이후부터는 벽돌기와집으로, 90년대 이후부터는 아파트로 주거지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옷차림을 보더라도 현저한 시대 변화의 흐름을 알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갓을 쓰던 것이 후에는 중절모자, 창모자로 바뀌었고, 두루마기, 치마저고리 등 전통적인 민족 복장이 일제강점기와 건국초기 그리고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디자인이 변화되었고 옷차림도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군복과 교복도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음을 역력히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결혼사진을 통해 그 시기의 웨딩드레스, 큰상, 결혼식장 등을 이해할 수 있으며 또 환갑사진을 통해 환갑 노인들의 의복이나 환갑상, 환갑식 분위기 등을 다소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탈곡기, 도리깨 같은 것도 한민족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시기의 노동현장이 어떠했는가도 확실하게 알려진다. 특히 사진에 쓰인 문자가 사진을 찍은 연대와 사진 속의 의미를 말해주어 해당 시기를 회상하는데 한결 도움이 된다.
사진뿐만이 아니다. 부록편에 실린 다양한 문서들은 칼라로 제작하여 역사의 향기를 더 드러내주고 있다. 사진집의 기획자인 길경갑 회장을 제1회 한민족청년상 수상자로 선발, 시상한 바 있는 해외한민족연구소이윤기 소장은 25년간의 연구소 운영의 마지막 소임으로 연변대학에 족보연구소를 세워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평강채씨족보 1-6권, 청주정씨족보가 눈에 띄었다. 중국역사의 대재앙이자 소수민족인 한인[조선족]사회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문화대혁명 시기, 한인[조선족]사회는 ‘민족주의자’, (북한의) ‘특무’[간첩] 등의 누명을 쓰는 것이 두려워 한글책과 자료, 그리고 한민족의 소중한 자료들을 불태운 바 있다. 한반도를 떠나올 때는 대부분 족보를 갖고 왔다고 하는데, 바로 이 때 대부분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실려 있는 두 장의 ‘호구부’[경상남도 밀양군 무안면, 통화성 류하현 강가점], ‘가옥매매계약서’, 그리고 ‘결혼증(서)’와 ‘환갑축문’, 각종 졸업증서와 성적증명서, 군 관련 각종 증명서 등은 한인[조선족]의 삶을 생생히 증언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지나간 시대를 기록한 한 장의 사진이 갖는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두 장의 호구부 가운데, 한반도를 떠날 때 갖고 온 ‘경상남도 밀양군 무안면 305번지’의 호구부는 호주인 김출이(金出伊)와 그의 처인 윤영아(尹寧娥) 가족의 이주사를 추적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윤선의 지적대로, “현장의 사진은 문자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효과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수십 년 전 아니 백 년 전에 찍은 사진이 그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윤선이 말했던 바 “민간의 것이 사회의 것이고 민족의 것이 세계의 것이다.”라고 한 주장은 다소 과장으로 들릴 수 있으나, 개혁개방 이후 동북 한인[조선족]사회, 특히 농촌 공동체가 와해되어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한인[조선족] 민간 옛 사진의 수집과 정리 및 연구는 영구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이윤선, 그는 오늘도 한인[조선족]의 옛 사진이 있다면, 업무를 뒤로 하고 방문하여 사진을 수집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무순시 조선족 문화관 생활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인지 후진 양성에도 열심을 내고 있다. 연변[용정]에서 만난 이광평 선생이 집단 이민 시기의 한인 마을을 찾아 이주1세대 노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주 과정과 정착 생활 등을 오디오, 때로는 비디오로 기록하여 소중한 역사자료로 만들어 온 것처럼, 이윤선도 요령성 한인[조선족] 사회를 답사하면서 민족의 역사를 기록해왔다. 이들의 투철한 소명의식, 민족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