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黃珍淵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사회주의 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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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조선 공산당 만주총국|간도 5.30 봉기 지도자 |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 출생지 | 함경북도 명천(明川) |
| 거주|이주지 | 만주 |
| 활동지 | 길림성 영안현 |
| 활동지 | 길림성 연길현 용정 |
| 활동지 | 길림성 연길현 용정 동량어구 승지촌 |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한 사회주의 운동가.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에 입당하여 활동하였으며 간도 5.30 봉기 때 항일 투쟁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함경북도 명천(明川) 출신으로 1918년 1월 거주지를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한의원을 경영하면서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였고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ML파]에 입당하였다.
1930년 5월 30일 간도 일대에서 상해 5·30 사건 기념일을 맞아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연변 당부(延邊黨部)가 주도하고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항일 무장 봉기, 일명 제4차 간도 공산당 사건[간도 5·30 봉기]때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 지역에서 항일 투쟁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6월에는 동량어구(東良於口)승지촌(勝地村) 지휘부의 일원으로서 제2차 봉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경성 지방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중 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