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崔相東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 |
| 대표경력 | 중국 공산당 화룡현위원회 서기|항일 유격근거지창설 |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4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5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말 |
| 몰년 시기/일시 | 1933년 1월 |
| 출생지 | 러시아연해주(沿海州) |
| 활동지 | 화룡현 평강구 |
| 활동지 | 화룡현 |
| 활동지 | 화룡현 어랑촌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최상동의 출신지는 러시아연해주(沿海州)이다. 중국동만주(東滿洲)에서 사회주의 사상단체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최상동은 1930년 중국 공산당 평강구(平崗區)위원회 서기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같은 해 9월 만주사변 발발 후 길림성(吉林省)화룡현(和龍縣) 어랑촌(漁浪村)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최상동은 1932년 4월 중국 공산당화룡현위원회 순시원으로서 춘황 투쟁(春荒鬪爭)에 나섰다. 1931년 9·18사건 이후 동북지방의 조선인들은 중국 공산당이 제기한 추수 투쟁과 춘황 투쟁을 벌이자는 호소에 따라 적극 호응하였다. 일본인 지주에게 감조를 요구하고 부당한 수익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춘황투쟁은 연길·화룡·혼춘 등지로 퍼져 나갔고 4개월 남짓한 시간에 조선인 농민 1만 5천여 명이 참가하였다. 이러한 투쟁은 항일투쟁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고, 일본 군경이 총칼을 동원하여 진압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1932년 5월 최상동은 중국 공산당 화룡현위원회 서기직을 맡아 활동하면서 러시아에 파견되었다.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학습하고 돌아왔다가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탈출하였다. 같은 해 말 화룡현 어랑촌에 항일 유격 근거지를 창설하였다.
최상동은 1933년 1월 어랑촌에서 일제의 항일 독립군 토벌 때 유격대 중대장 김세(金世)와 함께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