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崔今淑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사회주의 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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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여자 |
| 대표경력 | 왕청현 부녀회 책임자|항일 유격투쟁 |
| 출생 시기/일시 | 1908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9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 몰년 시기/일시 | 1934년 3월 21일 |
| 출생지 | 길림성 왕청현 |
| 학교|수학지 | 길림성 연길현 |
| 활동지 | 길림성 왕청현 |
| 활동지 | 길림성 왕청현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 독립운동가.
1931년 9·18사건 이후 동북지방의 조선인들은 중국 공산당이 제기한 추수 투쟁과 춘황 투쟁을 벌이자는 호소에 따라 적극 호응하였다. 일본인 지주에게 세금 감면을 요구하고 부당하게 거둬간 수익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춘황 투쟁은 연길·화룡·혼춘 등지로 퍼져 나갔고 4개월 남짓한 시간에 조선인 농민 1만 5천여 명이 참가하였다. 이러한 투쟁은 항일 투쟁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고, 일본 군경이 총칼을 동원하여 진압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최금숙은 1931년 9월 마을에 추수 투쟁이 일어나자 부녀회 회원으로 동참하여 투쟁을 하다가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였다. 이후 1933년 왕청현 부녀위원회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일본군의 독립군 토벌 작전이 시작되자 이에 대항하며 항일 유격 근거지인 소왕청지역 연락망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1934년 봄까지 일본군 토벌 작전으로 다친 항일 유격대 대원들을 치료하는 데 힘썼다.
최금숙은 1934년 3월 21일 일본군이 토벌 작전에 따라 포위망을 좁혀 오자 이를 피해 탈출을 시도하던 중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