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수

한자 車鍾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조선 공산당 만주총국 당원|간도 항일 농민운동
출생 시기/일시 1909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6월 16일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30년
몰년 시기/일시 미상
출생지 함경북도 성진군 학동면
거주|이주지 간도 국자가
활동지 간도
활동지 용정
활동지 용정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개설

차종수의 본적은 함경북도 성진군(城津郡) 학동면(鶴東面)이고, 간도 국자가(局子街)에 거주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차종수는 1927년 6월 16일 박재하의 집에서 이순의 권유로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 당원이 되었다. 차종수는 독립운동 사상을 고취하고 사회주의사상 전파와 동지규합에 힘썼다. 같은 해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 사건’ 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1928년 1월 경성 지방 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차종수는 1930년 1월 29일 출감한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서 1930년부터 1931년도까지 일어난 간도 항일 농민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다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1933년 경성 지방 법원에서 8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일제가 이른바 토지조사사업을 강행함에 따라 농토를 탈취 당한 농민들의 간도 이주가 계속되었다. 그 결과 1926년에는 간도 지방에는 중국인이 9,912호인데 비해 조선농민은 5만 2,881호에 달하였다. 농토는 전체의 52%를 소유했고, 화룡과 연길 지방에서는 평균 72%가 조선농민의 소유 농지였다. 이들의 인적·물적 자원의 공급에 의해 간도지역에서 항일 투쟁이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김준엽·김창순 공저, 『한국공산주의 운동사』 3~4 (청계연구소, 1974)
  • 『동아일보』 (1930.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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