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趙正哲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일제하 사회주의 계열의 무장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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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 |
| 대표경력 | 동북인민혁명군|동북 항일 연군중대장, 정치위원|재만한인조국광복회 조직원|조선 인민군|청진 해양대학학장 |
| 출생 시기/일시 | 1916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대 |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1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9년 7월 |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
| 몰년 시기/일시 | 1951년 3월 |
| 출생지 | 함경남도 덕성(德城) |
| 거주|이주지 | 길림성 |
| 학교|수학지 | 함경남도 덕성 |
| 활동지 | 길림성 |
| 활동지 | 함경북도 |
| 활동지 | 평양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조정철의 본적은 함경남도 덕성(德城)이다. 덕성학교 중등교육과정을 이수하였다. 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출감한 후 중국으로 건너갔다.
조정철은 1933년 봄 항일 유격대 대원으로 입대하여 동북 인민 혁명군 제2사 제1단 소속 대원으로 활약하였다. 1935년 12월 길림성(吉林省) 안도현(安圖縣) 지역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1936년 동북 항일 연군 제2군 제4사 소속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 5월 무산지구 국내 진공작전에 중대장직을 맡아 가담하였으며 같은 해에 재만 한인 조국 광복회 조직원으로서 함경북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39년 7월 동북 항일 연군 제1로군 제3방면군 제13단 정치위원직을 맡았으며, 1940년 말 러시아 영토로 건너갔다.
해방 후 조정철은 조선 인민군 창설에 가담하였으며, 1949년 2월 인민군 제3급 국기훈장을 받았다. 그 후 함경남도청진(淸津) 해양 대학 학장이 되었으며, 1950년 6·25전쟁 때 인민군 남해여단 정치위원직 등을 역임하며 활동하던 중 1951년 3월 전라남도 유치지구 전투 중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