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趙東律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 |
|---|---|
| 성별 | 남자 |
| 대표경력 | 중국 공산당 당원|동만 특별 위원회 대산둔구위원회 군사위원|반일 농민운동 |
| 출생 시기/일시 | 1907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대 |
|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7월 22일 |
| 출생지 | 함경북도 경성 |
| 활동지 | 길림성 연변 |
| 활동지 | 길림성 연변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코민테른의 1국 1당의 원칙에 따라 1930년 이후 간도를 비롯한 만주 지역에서는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공산당 조직에 가입해야 하였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활동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간도를 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대중폭동, 토지개혁, 소비에트 건설 등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조동률은 1930년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되었으며, 같은 해 7월 중국 공산당 동만(東滿)특별위원회 대산둔구위원회 군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그 후 조동률은 반일농민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이동선(李東鮮)·주현갑(周現甲)·박익섭(朴翼燮)·김광묵(金光默)·김동필(金東弼)·유태순(劉泰順)·고하경(高河鯨)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3년 12월 경성 지방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고등법원에 상고하였다. 1936년 상고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1936년 6월 18일 사형이 확정되었다.
조동률은 1936년 7월 22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박금철(朴金哲)·권태산(權泰山)·김용진(金龍震)·지연호(池蓮浩) 등과 함께 사형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