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광

한자 鄭一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대성중학 설립|조선 공산당 만주총국 당원|1차 간도 공산당사건
출생 시기/일시 미상
활동 시기/일시 1926년 2월
활동 시기/일시 1926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0월
몰년 시기/일시 미상
출생지 미상
활동지 길림성 연길현 용정
활동지 길림성 연길현 용정
활동지 길림성 연길현 용정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일광은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 대성 중학을 설립하고 민족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의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정일광은 1926년 2월 임계학(林啓學)· 이영식(李榮植)· 김하선(金河善) 등과 함께 길림성(吉林省)연길현(延吉縣)용정(龍井)에 대성 중학(大成中學)을 설립하였다. 이후 정일광은 그해 8월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 당원이 되어 조선 공산당 동만구역국(東滿區域局) 제2지부 조직원으로 활동하였다. 11월부터 교직생활도 하였다.

정일광은 1927년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사건 때’ 선전부장 김지종(金知宗), 동만도(東滿道)의 안기성(安基成), 만주총국의 책임비서대리 겸 조직부장 최원택(崔元澤), 김소연(金素然) 등과 함께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간도 공산당 사건은 1927년부터 30년까지 모두 3차에 걸쳐 일어났다. 방진성이 체포되었던 1차 사건은 1927년 10월의 일이며, 2차는 28년 9월, 고려공산 청년회 만주 총국동만도 간부 일부에 대한 검거다. 이들은 9월 2일 국제청년일 기념집회를 열려다가 일제영사관 경찰서에 탐지되어 72명이 검거되었다. 3차 검거사건은 30년 3월 장주련 등 만주총국 및 동만도 간부 50여 명을 체포하면서 일어났다.

정일광은 경성 지방 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출감 후 1934년부터 동흥 중학(東興中學)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참고문헌
  • 김준엽·김창순 공저, 『한국공산주의 운동사』 3~4 (청계연구소, 1974)
  • 『동아일보』 (1929.1.16)
  • 강만길, 『한국 사회주의 운동 인명사전』 (창작과비평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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