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林貞玉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일제 강점기 항일군 |
|---|---|
| 성별 | 여 |
| 대표경력 |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단원|중국 공산당 당지도부 서기|노동의무대 대원 |
| 출생 시기/일시 | 191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3년 |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 몰년 시기/일시 | 1934년 |
| 출생지 | 길림성 화룡현 |
| 거주|이주지 | 흑룡강성 목릉현 신안촌 |
| 활동지 | 흑룡강성 목릉현 신안촌 |
| 활동지 | 흑룡강성 소목단둔 |
| 활동지 | 길림성 영안현 |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 독립운동가.
임정옥은 1929년 부모를 따라 거주지를 흑룡강성(黑龍江省) 목릉현(穆陵縣) 신안촌(新安村)으로 옮겼다. 1931년 만주사변 후부터 신안촌에서 중국 공산당 지하조직에 도움을 주었다.
코민테른의 1국 1당의 원칙에 따라 1930년 이후 간도를 비롯한 만주지역에서는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공산당 조직에 가입해야 하였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활동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간도를 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대중폭동, 토지개혁, 소비에트 건설 등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임정옥도 1932년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단원이 되었다. 임정옥은 1933년에 소목단둔(小牧丹屯)에서 중국 공산당 당지도부 서기직을 맡아 활동하면서 탈곡한 벼를 항일 유격대 근거지인 팔도하자(八道河子)까지 옮겨 주었으며, 또 다른 항일 유격대 근거지인 평일파(平日坡)에서 남편 이광림이 인솔하는 노동의무대 대원이 되어 항일 유격대의 후방지원을 위해 힘썼다. 1934년 부대 내에서 군복 생산과 군복 수선 등의 재봉 일에 종사하였으며, 전투부대 대원을 자원하여 노농(勞農) 의무대 첫 여성전투원으로 활약하였다.
임정옥은 같은 해 가을 일본군과 격전이 벌어진 투구자(鬪溝子)에서 전사하였다. 남편 이광림은 1935년 12월 흑룡강성 영안현(寧安縣) 전투에서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