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복

한자 李學福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자
대표경력 명천군 3.1 운동
출생 시기/일시 미상
몰년 시기/일시 미상
출생지 함경북도 명천군
학교|수학지 함경북도 명천군
정의

일제 강점기 함경북도 명천군의 3.1 운동에 가담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적은 주소 함경북도 명천군 서면 입석동이다.

활동 사항

함경북도 명천군의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곧 그는 강승한(姜承翰)이 전국 각지에서 만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전하며 함께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함경 북도 명천군의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강승한·이서규·이현구·이영직 등과 조선 독립의 의지를 알리는 시위 운동을 할 것을 계획하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1919년 4월 14일 오후 1시경 모여든 약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함경 북도 명천군 서면에 있는 명동학교 뒤편의 무명천 변에서 조선 독립 만세기와 태극기를 펴 흔들고 조선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서규가 부탁한 태극기 재료 대금 1원 80전을 지불하고 군중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불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1919년 7월 31일 경성 복심 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자료집』 5 (삼일 운동 재판 기록),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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