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淳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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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 |
| 대표경력 | 만주고려 공산 청년회 간도지부 결성|조선 공산당 만주총국 동만구역국 조직부장|전투적 공산주의 동맹 결성 |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1921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6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12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10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4월 |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1939년 |
|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 출생지 | 함경북도 명천 |
| 거주|이주지 | 러시아 |
| 학교|수학지 | 모스크바 |
| 활동지 | 이르쿠츠크 |
| 활동지 | 연길현 용정 |
| 활동지 | 길림성 영안현 |
| 활동지 | 길림성 영안현 |
| 활동지 | 함경북도 청진 |
일제 강점기 국내와 러시아연해주, 중국만주 등지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이순은 1914년 러시아에 이주해 6년간 탄광 노동에 종사하였다. 1920년 이르쿠츠크 국제노동협회에 가입했고, 12월 러시아 공산당 이르쿠츠크 당학교에 입학하였다. 1921년 3월 빨치산 부대의 일원으로 백위군(白衛軍)에 맞서 싸웠다.
이순은 1923년 6월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에서 함께 동만주 지방으로 유학 온 10여 명의 동료들과 서울꼼그룹의 ‘간도총국’이 합쳐 국제공산청년동맹 동양부의 지도하에 고려 공산 청년회 간도지부 결성했을 때 참여하였다. 이후 1924년 봄 ‘간도 고려 공산 청년회총국’ 건립에 참여하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1924년 12월 동만주의 간도 고려 공산 청년회 총국과 상해꼼그룹의 조직인 북만주의 ‘중동선(中東線) 고려 공산 청년회’가 통합되어 만주고려 공산 청년회를 결성할 때 집행위원이 되었다.
이순과 함께 노령에서 동만주지방으로 유학 온 사람들은 1924년 하반기에 파벌을 청산하고 노령 지방 한인 공산주의 운동의 통일을 꾀하기 위해 연해주에서 러시아 당과 공청기관 내의 청년들로 비밀결사를 결성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발각되어 1925년 1월 러시아 공산청년동맹으로부터 종파를 결성했다는 혐의로 14명의 동료들과 함께 제명당했다.
1926년 10월 28일 이순(李淳)은 김인국(金仁國)·김용락(金龍洛) 등과 함께 동만구역국을 조직하였으며, 여기서 김용락이 책임비서로 선출되었다. 1926년 10월 만주 고려 공산 청년회의 성원들과 함께 같은 해 5월에 결성된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에 입당하고 집행위원이 되었고, 동시에 동만구역국의 선전부장이 되었다. 1927년 봄에는 동만구역국의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10월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사건’ 때 일제의 검거를 피해 남만주의 반석현(磐石縣)으로 이동하였다. 1928년 4월 ML그룹의 고려 공산 청년회 남만구역국에서 조직 활동을 지도하였다. 그런 가운데 1928년 하반기 모스크바에 유학해 동방 노력자 공산 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본과에 진학해 1932년에 졸업하였다.
이순은 1938년 함경북도 청진으로 가서 조선 공산당 재건운동에 종사하던 황석주(黃錫柱), 박순구(朴淳九), 박종순(朴宗淳)과 함께 반전(反戰)투쟁의 일환으로 항일 민족통일전선운동을 전개해 일제의 후방을 교란하고 무장봉기를 준비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 가운데 1939년 2월, 청진의 ‘전투적 공산주의동맹’의 결성을 지도하였다. 청진을 중심으로 한 ‘전투적 공산주의동맹’은 인민전선 이론에 기초한 후방교란 방침과 함께 청진 부근의 군사기밀을 탐지하여 반일 인민전선을 결성한 다음, 무장봉기를 단행하려는 준비를 당면 임무로 삼고 있는 조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