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李根寔 |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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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 | 남자 |
| 대표경력 | 보합단|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자금 모금 활동 |
| 출생 시기/일시 | 1880년 5월 8일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9월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11월 |
| 몰년 시기/일시 | 1956년 7월 5일 |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 1990년 | |
| 출생지 | 평안북도 선천 |
| 활동지 | 평북 의주군 동암산 |
일제 강점기 평안도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명은 근식(根植, 根湜)이고,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보내는 일을 하다 옥고를 치렀다.
1920년 9월 평북 의주군(義州郡)동암산(東岩山)에서 김중량(金仲亮)·박초식(朴楚植)·이광세(李光世)·조원세(趙元世) 등에 의하여 조직된 보합단(普合團)에 김도원(金道源)의 권유로 가담하였다. 같은 해 11월 8일 오후 3시 그는 박덕유(朴德裕)·김도원 등과 함께 선천군 동면(東面) 노하동(路下洞)에 거주하는 전석원(田錫元)에게서 군자금으로 현금 100원과 어음 400백원, 전석영(全錫永)에게서 5백원의 어음을 모금하였다.
모집한 군자금을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송금하다가 체포되어 1921년 4월 평양 복심 법원에서 징역 7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 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