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림

한자 李光林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사회주의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중국 공산청년단 영안현 서기|구국군 유격대|동북 인민 혁명군 제5군2사 정치부주임
출생 시기/일시 1910년
활동 시기/일시 1929년
활동 시기/일시 1930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2월
활동 시기/일시 1933년
활동 시기/일시 1934년
활동 시기/일시 1935년 2월
몰년 시기/일시 1935년 12월
출생지 길림성 연길현
학교|수학지 길림성 연길현 용정
활동지 길림성 연길현
활동지 흑룡강성 영안현
활동지 길림성 영안현
활동지 길림성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개설

이광림의 출신지는 중국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이다. 이광림의 부인은 첫 여성 전투원인 임정옥(林貞玉)이다.

이광림은 소학교를 졸업하고 연길현 용정(龍井)에서 중학교에 진학하였으나 학비가 없어 학업을 중단하고 중국 공산당의 당원이 되었다.

활동 사항

이광림은 1929년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단원이 되었으며, 1930년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되었다.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중국 공산당은 10월 12일 만주성 위원회에 항일 유격대의 창설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32년 봄에 이르러 만주 각지에서 유격대가 창설되기 시작했다. 한인들이 많았던 동만 지역에서는 연길·화룡·왕청·훈춘 등 각 현에 조직되어 있던 유격대를 통합하여 동북 인민 혁명군 제2군 제1독립사를 결성하였다. 이때 이광림은 조선 공산 청년단영안현(寧安縣) 서기직을 수행하면서 영안현·동경성(東京城)·소목단(小牧丹)·화검구(花瞼溝)·천교령(天橋嶺) 등지에서 조직 활동에 가담하였다.

이광림은 1932년 2월 유격대를 조직하여 일본군이 영안현을 점령하자 이에 맞서 싸우면서 동북지역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끌었다. 또한 1933년 영안 지역의 구국군(救國軍) 통합에 힘써 구국군 유격대를 조직하였다. 1934년에는 중국 공산당 만주 성위 순시원 겸 조선 공산 청년단만주성위 특파원직을 맡아 길동지구(吉東地區) 조직재건활동에 힘썼다. 같은 해 영안에서 중국 공산당 길동특위가 결성될 때 가담하였다.

이광림은 1935년 2월 반일 연합군인 동북 인민 혁명군 제5군 제2사 조직 결성에 가담하고 제2사 정치부주임이 되었으며, 반일 연합군 제4군과 제5군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광림은 같은 해 12월 흑룡강성 영안현 우가와봉 전투에서 일본군의 저격을 당해 부상을 입고 체포된 뒤 모진 고문 끝에 죽음을 맞았다.

참고문헌
  • 김준엽·김창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청계연구소, 1986)
  • 강만길, 성대경 편,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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