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성

한자 方振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평안북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황해도 신천군 만세 운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7일
출생지 황해도 신천군
활동지 황해도 신천군 용문면 사창리
정의

일제 강점기 황해도 신천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황해도 신천군에서 3·1 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방진성(方鎭星)은 황해도 지역의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7일 이치재(李致才), 권태응(權泰應) 등과 함께 황해도 신천군 용문면(龍文面) 사창리(司倉里) 일대의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의 만세 시위는 신천읍을 비롯하여 용진면(用珍面) 유천리(柳川里), 북부면(北部面) 석당리(石塘里) 등 각지에서 전개되었는데, 그중 신천읍에서 400여 명, 유천리에서는 3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참여하여 시위를 벌이던 중, 일본 헌병의 발포로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방진성은 이날 2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사창리의 헌병 분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사창리 주재소 앞에서 동리 주민과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 기숙사를 파괴하였다. 일본 헌병에 체포된 뒤 일제 고등 법원 형사부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전국적인 만세 시위 운동은 방진성과 같은 청년 학생들이 주도가 되었고, 일제는 무력으로 강경 진압해 통계상으로만 3개월 동안 7,509명이 사망했으며, 15,961명이 상해를 입었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 사자료집』 제5권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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