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준

한자 方明俊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성별 남자
대표경력 조선 공산당 만주총국 당원|1차간도 공산당 사건
출생 시기/일시 1899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10월
몰년 시기/일시 미상
출생지 함경북도 부령군 산해면
거주|이주지 길림성 연길현 국자가
활동지 길림성 연길현
활동지 길림성 연길현 용정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개설

방명준의 본적은 함경북도 부령군(富寧郡) 산해면(山海面)이고, 중국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 하방장리로 거주지를 옮겨 살았다. 제1차 간도 공산당 검거 사건 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방명준은 1927년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 당원이 되어 사유재산제 반대와 사회주의사상 전파 및 동지규합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0월 당시 서울에서 진행중이던 조선 공산당 공판에 대한 공개를 요구하는 시위운동을 계획했다가 ‘제1차 간도(間島) 공산당 사건’ 때 선전부장 김지종(金知宗), 동만도(東滿道)의 안기성(安基成), 만주총국의 책임비서대리 겸 조직부장 최원택(崔元澤)·김소연(金素然) 등과 함께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간도 공산당 사건은 1927년부터 30년까지 모두 3차에 걸쳐 일어났다. 방명준이 체포되었던 1차 사건은 1927년 10월의 일이며, 2차는 1928년 9월 고려공산 청년회 만주총국동만도 간부 일부에 대한 검거 사건이다. 이들은 9월 2일 국제청년일 기념집회를 열려다가 일제영사관 경찰서에 탐지되어 72명이 검거되었다. 3차 검거사건은 1930년 3월 장주련 등 만주총국 및 동만도 간부 50여 명을 체포하면서 일어났다. 3·1 운동 11주년을 맞아 농민·학생·노동자들의 대대적 시위운동을 조직했으며, 이를 무장봉기로 발전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던 중 일제 영사관 경찰서에 탐지되어 검거 당하였다. 방명준은 1927년 10월 1차 사건 때 체포되어 1928년 12월 5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최원택(崔元澤)·김지종(金知宗)·안기성(安基成)·이주화(李周和) 등 27명과 공판을 받았다. 국체변혁, 조선독립, 공산제도 실현을 위한 조선 공산당을 조직 가입하고 만주에 총국을 설치하며 각세포 조직 활동을 강화하였다는 이유로 경성 지방 법원에서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30년 1월 29일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 「간도(間島)에서 피체된 공산당관계자 방명준(方明俊) 등 15명, 경성(京城)으로」(『동아일보』, 1927.10.22)
  • 「경성 지방 법원은 간도 공산당 사건의 예(豫)」(『동아일보』, 1928.5.1)
  • 「간도 공산당 사건 관계자 29명 중」(『동아일보』, 1928.12.6)
  • 「간도 공산당 사건의 관련자 28명에」(『동아일보』, 1928.12.28)
  • 「간도 공산당 사건으로 1년 6개월 징(懲)」(『동아일보』, 19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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