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한

한자 金東漢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사회주의자에서 변절한 친일파
성별
대표경력 러시아공산당원|로중(露中) 국경 방어군 부대장|적색 조선인 혁명군 장교단장|간도협조회 회장|친일활동
출생 시기/일시 1892년
활동 시기/일시 1916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17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9월~
활동 시기/일시 1922년
활동 시기/일시 1934년 9월
몰년 시기/일시 1937년
출생지 함경남도 단천
거주|이주지 만주
학교|수학지 평양
학교|수학지 러시아이르크츠크
활동지 모스크바
활동지 러시아이르크츠크
활동지 하바로프스크
활동지 하바로프스크
활동지 간도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자로 활동하다 변절하여 만주국에서 친일 활동을 했던 대표적인 친일파.

개설

김동한은 함경남도 단천 출생으로 만주국에서 활동했던 친일파 중 주목되는 인물이다.

활동 사항

김동한은 1909년 평양에서 3년제의 중학을 졸업했다. 1910년 조선이 병합되자 만주로 건너갔다. 항일 운동에 가담하여 이동휘(李東輝)와 투쟁하면서 총참모(總參謀)를 역임했다. 이후 이동휘와 러시아로 들어갔다.

김동한은 1916년 이르크츠크에서 2년제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후 1916년 4월 이르크츠크 보병 제27연대 사관(士官)으로서 민스크 전선에 참여했다. 1917년 볼세비키에 의한 러시아 혁명 이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했다.

트로츠키파로 분류되는 김동한는 고려 공산당 군사부 위원을 역임했다. 트로츠키에 의해 1921년 이르크츠크 고려 여단 검사위원(旅團檢査委員)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하바로프스크 제2군단사령부정보과원(第二軍團司令部情報科員), 10월에는 적위군 소좌로서 로중국경방어군부대장(露中國境防禦軍部隊長)으로서 활동했다. 이때 그는 만주로 진격하기도 했다. 이후 적색(赤色) 조선인 혁명군 장교단장(將校團長)에 임명되었다.

스탈린이 소련공산당의 주도권을 장악하자 김동한은 트로츠키파라는 이유로 1922년 제명되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석방 이후에는 중국 군벌 오패부(吳佩孚)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추방되었고, 신병이 일본영사관에 인도되었다.

1925년 이후 김동한은 친일파의 길을 걸었다. 김동한은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을 전개하던 수많은 애국인사들을 검거, 살해하는 일에 가담하는데, 특히 조선으로 돌아와서는 스파이로 활동했다. 1934년 9월 설립된 대표적인 친일조직 ‘간도 협조회(間島協助會)’의 회장을 맡았다. 특히 간도협조회 산하에 무장 조직으로 ‘의용 자위단(義勇自衛團)’과 ‘협조 의용단(協助義勇團)’을 조직해서 항일 유격대를 상대하는 특수 공작에 적극 나섰다. 항일 유격 대원, 항일 운동가들에 대한 체포와 귀순 공작에 능력을 발휘했다.

김동한은 1937년 12월 동북 항일 연군 제11군 정치부 주임 김정국(金正國)을 귀순시키려고 제11군의 활동 구역인 삼강성(三江省) 의란현(依蘭縣) 반전구에 들어갔다가 통하현 경찰대장, 경무국장 등 13명과 김정국 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그의 친일 활동으로 인해 중국인들에게 ‘조선인은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평도 있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한국학 중앙 연구원, 1991)
  • 리창역,「간도 협조회의 죄행」(『중국 조선 민족 발자취 총서』 3-봉화-, 민족 출판사, 1989)
  • 『滿鮮 日報』(1939.12.13)
  • 한국 역사 정보 통합 시스템 (http://www.koreanhistor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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