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수

한자 金達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부산 3.1 운동 주도
출생 시기/일시 1888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9일
몰년 시기/일시 1924년
추모 시기/일시 1995년
출생지 부산 광역시
정의

일제 강점기 국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부산 동래(東來)구포(龜浦) 시장에서 면민 1천 2백여 명의 군중을 지휘하며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부산(釜山) 출신으로 1919년 3월 29일 부산 동래(東來)구포(龜浦) 시장에서 군중을 지휘하며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명으로는 달수(達銖)·달수(達守)를 사용하였다. 구포는 낙동강 좌안에 위치하여 부산·김해·양산·동래에 접한 요충 지대로써 김달수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곳의 만세 운동은 부산과 동래의 만세 소식을 접하면서 시작되었고, 3월 중순 경성 의학 전문 학교 생도인 양봉근(楊奉根)이 구포로 내려오면서 구체화되었다.

구포 장날인 3월 29일에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정하고, 3월 27일과 28일에는 거사에 필요한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밤을 세워 인쇄·제작하였고 거사 당일날 구포 시장에서 장꾼 1천여 명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11명의 인사가 일경에 붙잡히게 되자, 김달수 등 젊은 청년은 붙잡힌 인사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금 대오를 정비하여 1천 2백여 명의 군중을 지휘하면서 주재소로 돌진하였다. 주재소를 돌진한 청년들은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하고 의자와 책상 등 집기를 부수면서 구금된 인사들을 구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총격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김달수는 체포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1919년 7월 19일 부산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에서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가 보훈처,『獨立 運動史』3,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69년)
  • 국가 보훈처,『大韓民國 獨立 有功者 功勳錄』12, (공훈록 편찬 위원회, 1996)
  • 『한국 독립운동사 정보 시스템』(독립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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