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曠野의 호랑이 |
|---|---|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영화 |
|---|---|
| 양식 | 만주 웨스턴 |
| 감독 | 김묵 |
| 출연자 | 신영균|김혜정|황해|허장강|장혁|서영춘|김운하|이용|양훈 |
| 주요등장인물 | ‘호랑이’(신영균 분)|‘두더지’(황해 분)|‘월산’(허장강 분)|‘염소’(서영춘 분)|‘돼지’(장혁 분)|광복군 대장(전창근 분)|광복군 대장의 딸(김혜정 분) |
| 창작|발표 시기/일시 | 1965년 1월 16일 |
| 초연|시연장 | 서울시 을지로 |
1965년 대한 연합 영화 주식 회사에서 김묵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만주 웨스턴 영화 제작기의 중반기에 산출된 영화.
「광야의 호랑이」는 김묵 감독의 영화이다. 곽일로가 각본을 담당했고, 제작사로는 대한 연합 영화 주식 회사가 참여했으며, 기획은 양봉식이 맡았다. 촬영은 김재영, 조명은 윤창화, 편집은 유재원, 음악은 김용환, 미술은 홍성칠, 소품은 차순하, 의상은 서광사, 녹음은 한양라보, 효과는 최형래, 스틸은 장영성, 현상은 대영이 맡았다. 이 작품은 1965년 베를린 영화제 한국 출품작으로 추천된 바 있다.
「광야의 호랑이」는 1965년 1월 16일에 국도 극장에서 개봉했으며 약 5만명의 관객이 관람하였다. 1965년에 대만에 수출되기도 한 영화였다.
「광야의 호랑이」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웨스턴 영화의 모티프를 강하게 수용하였다. 특히 「황야의 7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흡사했다고 한다. 또한 월산의 인물형이 ‘무뢰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일관성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영화이다. 월산의 성격에는 여자를 탐하고 불의마저 무시로 넘나들지만, 대의를 지키고 여인을 보호하는 남아다운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 이 점은 지나친 계몽성에 휩싸여, 무리한 인물 설정을 벗어날 수 있는 중대한 장점에 해당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광야의 호랑이’(신영균 분)이다. 그는 게릴라 영웅인데, 독립군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는 단신으로 일본군 수용소에 침투하고 동지들을 구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한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각 방면에서 뛰어난 역량을 자랑하는 5명의 협조자들이 모여든다. 열차강도 명사수 ‘두더지’와, 아편장수 ‘월산’, 날치기 ‘염소’, 단검의 명수 ‘돼지’ 그리고 줄 잘 타는 학도병 ‘꼬마’가 그들이다. 그들은 반사회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마음 깊숙이 조국에 대한 열정과 의협심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만주의 주요 시설인 용문교를 폭파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고, 장엄한 희생을 불사하며 이 임무를 완수한다. 이로 인해 일본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독립군은 전선에서 우월한 위치로 올라설 수 있다.
박유희는 만주 웨스턴류의 “영화가 지닌 이중성을 표면적인 주제로 수렴하기 위해 지난한 봉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1960년대 전반기 대륙물의 특징”이라고 전제하고, 196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 “이면의 에너지가 표면적 주제를 잠식하면서 결말의 봉합이 서사적 개연성에서 벗어나 의례적으로 처리되는 양상”을 띠게 되는데, 이것은 “계몽적 당위와 재미가 분열되면서 계몽적 당위에 의한 안도감이 장르적 재미에 점차 자리를 내어주는” 현상을 드러낸다고 정리했다. 1965년 영화인 「광야의 호랑이」는 이러한 단초를 보여주는 영화인 셈이다.
한석정은 만주 웨스턴이 강한 남성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영화였다고 진단하면서, 「광야의 호랑이」가 1960년대 방공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광야의 호랑이」의 주인공들은 중국국민당(당시 한국의 맹방인 타이완의 장개석 정권의 전신)의 부대의 도움을 받고, 팔로군(중일전쟁 후 개명된 중국 공산군)과 대립”하고, 작품의 “주인공들은 일본군과, 조선인들을 습격하는 팔로군 두 적과 맞서 싸우”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