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裡里 |
|---|---|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영화 |
|---|---|
| 작가 | 장률|김성태 |
| 감독 | 장률 |
| 출연자 | 윤진서|엄태웅|윤영규|Mohammed Jano|고울훤|최은정|김준성|홍지연 |
| 주요등장인물 | 진서[윤진서 분]|태웅[엄태웅 분] |
| 공연시간 | 108분 |
| 창작|발표 시기/일시 | 2008년 11월 13일 |
| 초연|시연장 | 부산 |
2008년 자이로픽쳐스와 스폰지에 의해 제작된 영화로, 1977년 11월 11일 전북 이리시[현재 익산시] 이리역 폭발사건에 의해 피해를 입은 남매의 30년 후의 삶을 한인[조선족] 감독이 다룬 작품.
영화 「이리」는 한인[조선족] 영화감독 장률이 한국 제작사의 의뢰를 받아 한국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제작사는 ‘자이로픽쳐스’와 ‘스폰지’였고, 각본은 장률과 김성태가 맡았으며, 투자사는 KTB캐피탈㈜, KTB영화 다양성을 위한 투자 조합, 스폰지[공동제공]이었다. 프로듀서는 윤병기, 기획은 박진원과 김성태, 촬영은 김성태, 조명은 이준식, 편집은 임선경, 의상은 김윤희, 분장은 김은아가 맡았다. 배우로는 윤진서와 엄태웅을 비롯하여, Mohammed Jano, 고울훤, 최은정, 김준성, 홍지연 등이 출연했다. 윤진서와 엄태웅은 ‘진서’와 ‘태웅’이라는 극중 이름으로 출연했다.
장률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도 잊힌 사건을 영화를 통해 다시 불러들인다. 장률의 이러한 시도는 영화 「중경」(2007년)에서 이미 단초를 보인 바 있다. 「중경」에는 이리에서 왔다는 한국 사람이 등장하고, 그 한국 사람은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경」의 여주인공인 ‘쑤이’에게 이리에 가서 중국어 강사를 해보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을 하는데, 영화 「이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리에 도착하는 새로운 중국어 강사는 쑤이였다.
그리고 장률은 「이리」를 통해 30년 전 폭발 사고로 인한 삶의 균열이 완전히 봉합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 사고의 영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내면과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밝히고 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한 여자와 그 여자를 돌보는 가족의 삶을 비참하게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선은 장률이 한국 사회와 인간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다.
영화의 도입부는 이리역 폭발 사건 30주년 행사를 치루는 행사장의 풍경을 포착한다. 카메라의 화면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아나운서의 시선을 따라 여기 저기를 배회하는데, 이러한 무빙 카메라의 시점은 관객들에게 1977년 이리역 참사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고, 당시 생존자에 대한 화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집을 잃고 혼자 살아야 했던 당시 어린아이들의 모습[사진 자료]이 포착되고, 그 위로 성장한 진서의 모습이 겹쳐 나타난다. 영화는 이후 진서의 삶과 그녀를 돌보는 오빠 태웅의 삶을 전개시켜 나간다.
영화 「이리」는 30년 전에 발생했던 이리역 폭발사건을 소재로 삼고, 이리역 주변의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1977년에 일어난 이 폭발 사고는 인구 13만의 도시 이리(현재는 익산)에 적지 않은 충격을 선사한 바 있다. 진서와 태웅 남매는 그 폭발 사고에서 생존하였는데, 지금은 30대의 젊은이로 성장한 후였다.
이리역 폭발 사고는 한국에서 가장 큰 폭발 참사로 기록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이 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이 사고는 열차에 실려 있던 다이나마이트가 승무원의 안전 부주의에 의해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이 사고는 이리시 주민들을 공포와 암흑에 떨게 했고, 많은 인명 피해와 정신적 문제를 야기했다. 그 뒤 이리는 익산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폭발사고는 조용히 잊혀졌다.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면, 「이리」는 폭발 사고가 발생한 30년 후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폭발 당시 진서는 엄마의 뱃속에 있었고, 폭발로 인해 세상에 나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이 사건으로 사망했고, 그녀는 고아로 성장해야 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정신적인 이상을 앓게 되었는데, 그 원인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태어날 때의 충격 때문이었다.
진서에게는 태웅이라는 오빠가 있고, 태웅은 택시 운전을 하며 진서와 함께 살고 있다. 영화의 현재 시점에서 두 사람은 장성한 상태이지만, 1977년 폭발 사고 이후 두 사람이 걸어왔을 길은 험난한 그 자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동생 때문에 태웅은 두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것에 힘겨움을 느낀다.
진서는 출생부터 폭발의 아픔을 담고 있는 아이였고, 주변 사람들에게 바보로 인식되면서 여러모로 이용만 당하고 있다. 진서가 일하는 중국어 학원 원장은 진서의 월급을 간단하게 체불하기 일쑤이고, 동네 총각은 진서를 강간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버젓이 거리를 활보한다. 다방 레지는 진서의 착한 성품을 악용하여 커피 심부름을 대신시키고, 그 바람에 진서는 다시 한 번 남자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다. 목재소를 하는 외국인도 진서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쓰러진 진서를 부축한다는 명목으로 강간을 시도하는 등 마을 사람들은 정신 지체 부자유자인 진서를 육체적으로, 금전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오빠 태웅은 그녀를 돌보는 것에 점점 어려움을 느낀다. 태웅이 택시 운전을 하다가, 쓰러진 진서를 위해 달려가는 장면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진서는 유산을 한 상태였고, 태웅은 이러한 일을 여러 번 겪은 듯 익숙한 몸짓으로 이후 일정을 처리한다. 진서는 폭발 사고로 인해 장애를 앓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진서를 유혹하여 성욕을 채우기에 바쁘다. 한 여자의 삶이 주변의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 망가지고 있고, 오빠는 이러한 진서를 속수 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결국 태웅은 진서의 아픔과 자신의 무기력을 보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고자 한다.
태웅이 진서를 바다로 데리고 가서 익사시키려고 하는 장면은 작품의 거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멀리서 보면 그들은 고통스러운 자신들의 인생과 성장의 부채를 청산하려는 몸짓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태웅은 그동안 공들여 만들었던 도시 미니어쳐를 파괴하고, 진서는 학원 입구에서 새로운 강사 쑤이를 맞이한다. 그들의 삶은 다시 과거의 무게를 짊어지고, 현재의 궤도 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30년 전 일어난 일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로, 장률이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낯선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장률이 한국에서 처음 연출한 작품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