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泉坪벌 |
|---|---|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개산둔진 선구촌 |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 성격 | 지명/자연 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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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구간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개산둔진 선구촌 |
중국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동남부 개산둔진에 있는 평원.
일찍 200여 년 전에 만주족의 선인들인 숙신과 여진인들이 이곳에서 삶을 영위하였다. 청조에 이르러 이곳은 ‘봉금구’로 되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되었다. 광서 초기부터 조선의 빈곤한 농민들이 월경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1884년에 청정부와 조선이 ‘길한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광제욕[현재의 광소촌]에 기구를 설치하여 통상무역을 행하였다.
1894년에 광제욕에 월간국 영원보(寧遠堡)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10개 사(社)를 설치하였다. 광서 말기에 10개사를 7개 사로 통합하였다. 1909년에 화룡현을 설치한 후 7개 사를 사광(四光)과 삼개(三開) 두 개 사로 합병하였다.
조선인 이주가 점차 많아지면서 이곳은 조선의 종성과 마주하여 ‘종성간도’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만주국 시기에는 2개 사를 하나로 합병하여 광개촌이라고 명명하였다. 1945년에 광개구를 설치하고 1956년에 광개구를 자동과 광개 2개 향과 개산툰진으로 분리하였다. 1958년에 개산둔진으로 통합하였다가 1964년에 개산둔진과 광개공사로 분리하였다. 1988년에 광개향은 다시 개산툰진에 편입하여 개산둔진으로 통합하였다.
이곳은 지세가 평탄하고 토지가 비옥하며 수자원이 풍부하여 벼 농사에 적합하다. 천평벌은 연변지역에서 벼 재배가 가장 일찍 진행된 지역이다. 일찍이 1890년경에 이곳에는 이미 벼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후에 이곳의 벼는 점차 질이 좋아 널리 알려져 나중에는 황제에게 공미를 바칠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았다. 유명한 어곡전이 바로 천평벌에 위치해 있다.
천평벌의 명칭은 이 지역의 샘물에서 기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