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 지역 | 길림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단막극 |
|---|---|
| 작가 | 황봉룡 |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25년 11월 23일 |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98년 7월 28일 |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953년 |
| 편찬|간행 시기/일시 | 2005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2년 9월 3일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2년 9월 3일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1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6년 |
한인[조선족] 극작가 황봉룡이 1953년에 발표한 단막극.
「새각시」는 극작가 황봉룡이 창작하여 1953년에 발표한 단막극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10주년 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6·25 전쟁의 불안한 기운이 감도는 시기에 창작되었다. 중국군 참전을 계기로 미국은 중국 봉쇄 정책에 나섰고, 이것은 중국 정부와 공산당에 큰 위협으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대외 방어 개념의 전쟁 의식이 확대되었고, 모택동 정부는 사유 재산의 공유화 즉 공산 사회로의 이행을 서둘러 시행하게 되었다.
「새각시」는 양식을 절약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고 믿는 며느리와 전통적인 중국인의 체면을 중시하는 시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며느리 ‘선순’의 의견이 긍정적인 의견으로 제시되고 있고, 시아버지의 관습적 사고는 타파되어야 한 구습으로 상정되고 있다.
주인공 선순은 밥을 할 때 쌀을 덜어내고, 내년에 먹을 쌀을 예측하여 당장 먹을 것을 제외하고는 저장하며, 물건과 물자를 아끼는 태도를 취하는 며느리이다. 이것은 모범적인 ‘공청당원’으로서의 선례를 보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미지에 닥칠지도 모르는 미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선순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식량 절약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시아버지에게 강조하지만, 시아버지는 이러한 선순의 태도에 쉽게 동참하지 못한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선순과 시아버지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선순은 근검 절약하는 습관을 실천하려 하는 반면, 시아버지는 과거 중국의 구습에 사로잡혀 있다. 두 사람은 시아버지 박영감의 회갑 잔치 문제로 대립한다. 박영감은 자신의 회갑 때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야 이웃들에게 면목이 선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선순은 겉치레보다는 실속을 갖춘 회갑 잔치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견지하고 있다. 설령 과거의 미덕이 그러했다 치더라도, 앞으로는 국가와 당이 주도하는 정책에 맞추어 이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장막극은 작품 내부에 의도와 설정을 매설하고 이를 발전시킬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단막극은 지면과 공연상의 제약으로 인해 이러한 여유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따라서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사회적 통념과 시대 감각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는데, 황봉룡은 변화하는 중국 사회 현실의 일각을 작품 내부로 끌어들이는 데에 능숙했다. 황봉룡의 희곡은 변화하는 중국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줄 수 있는 기본적 토대를 마련한 작품이다. 황봉룡의 단막극은 비록 교조적이고 경직된 이념 위에서 축조되었지만, 이러한 이념의 배경과 목표 그리고 갈등 대상을 명확하게 상정할 줄 알았다는 점은 중요한 특징이 아닐 수 없다.
김흠은 「새각시」가 ‘근검치가’ 혹은 ‘약식 절약’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기형은 주인공 선순이 “해방 받아 나라의 주인으로 된 새 시대의 착실한 며느리의 전형”이라고 평했다. 틀림없이 「새각시」는 새로운 혁명을 달성한 세대와 기존의 보수 세대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두 세대의 차이는 경제관과 풍속관에서 비롯된다. 양식을 절약해서 당과 정부의 정책에 일조하여야 한다는 며느리[선순]의 주장과 개인의 체면을 위해 재래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입장이 대립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황봉룡은 두 사람의 갈등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김기형이 지적한 대로 두 사람의 인물 형상은 현실에서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황봉룡은 이러한 측면에서 인물 창조 능력이 뛰어난 극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황봉룡이 이러한 인물을 창조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의 정책은 궁극적으로 대외적인 위기 의식을 타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황봉룡은 작품에서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며, 선순이라는 인물 창조를 통해 전쟁의 의의와 대미의식의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