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한 약력표」

한자 怪狀한 略歷表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장막극
작가 황봉룡
저자 생년 시기/일시 1925년 11월 23일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98년 7월 28일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979년 8월
편찬|간행 시기/일시 2005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2년 9월 3일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2년 9월 3일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1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정의

한인[조선족] 극작가 황봉룡이 1979년에 발표한 장막 희곡.

개설

「괴상한 약력표」는 극작가 황봉룡이 창작하여 1979년에 발표한 장막 희곡으로, 풍자극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황봉룡은 이 작품에서 연극[희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영화적 문법과 카메라 조작을 활용했다. 이것은 연극이 가진 단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연극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함이었다. 이로 인해 희곡의 일반적인 문법에 변형이 가해진다. 등장인물이 무대에 등장하여 행동과 대사를 통해야만 관객에게 인지되던 관극 상의 관례에서 벗어나, 미리 등장 인물을 소개하고 그 이미지[만화 캐릭터]를 전달한 상태에서 실제 등장 인물을 등장시키는 형식을 창조할 수 있었다.

구성

황봉룡은 「괴상한 약력표」의 도입부에서 이력서를 클로즈-업하여 평소 공연에서는 관객이 식별할 수 없는 고진성의 이력서를 확대하여 보여주었다. 또한 만화 캐릭터를 제시하여 관객이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더구나 화외음을 삽입하여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화외음은 연변 지역 희곡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연극적 기법으로, 무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리킨다. 이러한 화외음은 등장인물의 속마음이나 속생각, 속말 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즐겨 사용된다. 현대 용어에 비견하면 일종의 ‘내레이션(narration)’으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관계없이 연극적 상황을 전달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하는 기법이다. 화외음을 듣는 관객들은 인물들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의 대강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가령 고진성의 화외음을 참고하면, 고진성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력서를 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인물[서씨]의 화외음은 작품 내용 중 특정 대사를 그대로 옮겨왔다. 가령 고진성이나 채봉선 혹은 정미화의 화외음은 대사를 옮겨온 것은 아니다. 거꾸로 말하면, 희곡 속에서 그들의 화외음이 대사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화외음은 그들의 성격을 기반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서씨의 화외음은 서씨의 대사를 약간 변형한 것이다.

「괴상한 약력표」의 서두는 삽입 화면(揷入畵面,insertshot) 기법을 활용했다. 삽입 화면이란 극중의 특정 액션이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거나 강조하기 위해 영상적인 세부 묘사를 삽입하는 방식이나 삽입된 화면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개 접사(close-up)나 대접사(extreme close-up) 등의 세부화면이 주로 사용된다. ‘괴상한 이력서’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것과 만화 캐릭터를 창조해서 내레이션을 부가하는 것 모두 영상적 세부 묘사에 해당한다. 또한 접사를 사용한다는 일반적 현상에도 부합된다.

특징

황봉룡이 「괴상한 약력표」를 발표한 시점은 1979년 8월이다. 김기형과 김창길은 3중전회(1978년) 후 한인[조선족] 연극 예술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진단하면서, 그 한 예로 「괴상한 약력표」를 들고 있다. 사상 해방의 방침과 4가지 기본 원칙이 만들어지면서 그 이전에는 무대화 할 수 없었던 제재들이 허용되었는데, 「괴상한 약력표」의 풍자극적 성향도 이러한 예에 해당된다고 했다. 「괴상한 약력표」는 문화대혁명 시절 억압되었던 예술 창작 욕구와 비판 정신을 살려낸 혹은 새롭게 구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작품은 희곡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요소, 즉 영화적 기법과 시나리오의 문법이 상당 부분 포함되었다. 「괴상한 약력표」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희곡이 한계에 봉착하자, 이를 돌파하기 위한 방식으로 이웃 장르인 영화의 특징을 도입한 경우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와 문화[예술 장르] 접변의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황봉룡이 시나리오를 실제로 썼고, 그 시나리오를 쓰기 직전에 「괴상한 약력표」를 통해 영화적 기법 즉 영상 텍스트의 형식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황봉룡은 「장백의 아들」의 희곡 세계에서 「괴상한 약력표」와 같이 희곡과 시나리오 문법이 과도기적 공존을 보이는 세계로, 그리고 「죄없는 죄인」류의 시나리오 창작세계로 관심을 이동해갔다.

의의와 평가

김흠은 「괴상한 약력표」가 고관석·장승구·방태악을 서사의 한 축으로 고진성과 채봉선을 다른 한 축으로 해서 양 측의 갈등을 구현했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갈등을 통해 권력 다툼과 4인 무리의 죄행을 폭로하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진성이마저 성위(省委) 부서기 고관석의 특권을 빌었다는 점은 투쟁 책략상의 영활성 외에도 진성이 역시 권력에 대한 숭배사상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하며, 인민대중들이 가지고 있은 권력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었다고 비판했다.

김기형은 황봉룡의 대표작으로 「장백의 아들」과 단막극 「각시」, 「예조리 영감」 등을 꼽았으며, ‘4인 무리’가 분쇄된 이후 「괴상한 약력표」와 영화대본 「죄없는 죄인」 등을 대표작으로 거론한 바 있다.

김재석은 「괴상한 약력표」의 고진성은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고상한 품성의 인물이 아니며 상대방의 약점을 가지고 흥정하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소영웅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인물 창조를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상황에서 흘러간 시대의 인물들을 희극적으로 비판하려는 시도로 해석한 것이다. 김재석의 논리를 정리하면, 고진성은 ‘뢰봉 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설정된 인물로 그 이전 영웅형 인물과는 차별화되는 혼란을 예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개혁의지와 함께 치사한 책략도 병용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김재석은 이러한 인물 창작법이 개방화 이후 혼란한 작가 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결론짓고 있다.

참고문헌
  • 권철·정룡, 「동북 항일 무장 투쟁의 송가」(『연변조선족자치주 정립 30돌 기념 문학 평론집』, 민족 출판사, 1982)
  • 김기형, 「황봉룡과 그의 연극 창작의 특점」(『연변조선족자치주 정립 30돌 기념 문학 평론집』, 민족 출판사, 1982)
  • 김남석, 「조선족 극작가 황봉룡의 단막극 연구」(『우리 어문 연구』28, 2007)
  • 김남석, 「조선족 극작가 황봉룡 희곡에 나타난 영화 기법 연구」(『한국 문학 논총』47, 한국 문학회, 2007)
  • 김남석, 「조선족 극작가 황봉룡의 「장백의 아들」에 나타난 ‘동북 항일 련군’의 극적 수용에 관한 연구」(『동북아 문화 연구』34, 동북 아시아 문화 학회, 2013)
  • 김운일, 「연극사」(『예술사』, 북경대학 조선 문화 연구소, 1994)
  • 김재석, 「격랑의 역사에 대한 연극적 대응」(『한국 극예술 연구』11, 2000)
  • 김흠, 「황봉룡 론」(『조선족 문화 연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89)
  • 조글로(http://www.ckyw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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