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長白의 아들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장막극 |
|---|---|
| 작가 | 황봉룡 |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925년 11월 23일 |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998년 7월 28일 |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959년 |
| 편찬|간행 시기/일시 | 2005년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2년 9월 3일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2년 9월 3일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1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6년 |
| 배경 지역 |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왕청현, 화룡시, 혼춘시 |
1959년 한인[조선족] 극작가 황봉룡이 발표한 장막 희곡.
「장백의 아들」은 극작가 황봉룡이 창작하여 1959년에 발표한 장막 희곡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조선족 연극사[희곡사]에서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장백의 아들」은 1959년 중국 건국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창작된 작품으로, 대약진 운동기인 1958~1966년의 극작 성향을 착실하게 이어받은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중국 건국의 배경을 설명해야 했고, 중국 체제의 대약진을 독려할 수 있는 ‘혁명적 이상’을 지닌 인물을 다루어야 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450차례 이상 공연되면서, 이러한 정치·사회·역사적 요구를 달성한 작품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황봉룡이 이 작품을 발표하던 1959년 무렵은 중국 전역에 대약진 운동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으로 특정 인물에 대한 개인 숭배 조짐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에 해당한다. 물론 대약진 운동에서 개인 숭배의 대상은 ‘모택동(毛澤東)’이었지만, 이러한 성향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 ‘혁명적 이상’을 실천하는 영웅상을 찾는 작업을 유행시켰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소수민족과 한족의 관계 역시 새롭게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한족은 우월한 위치에서 소수민족을 ‘보듬어 안는 자’로 부상했으며, 이러한 관계가 파괴되었을 경우 소수민족은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른바 ‘한족 형님[漢族老大家]’이라는 개념이 한족과 소수민족의 관계를 상징하는 기표로 통용되었다.
이러한 ‘한족-소수민족’의 관계는 소수 민족 문학에 전반적으로 적용되었으며, 한인[조선족]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장백의 아들」에서 혁명적 이상을 실천하는 영웅상은 일차적으로 ‘박철’로 제시되었지만, 동시에 ‘왕정위(王正委)’나 ‘양사령’ 등의 중국인으로도 비중 있게 형상화되고 있다.
황봉룡은 '유격구[공산군의 거점, 작품 속 지씨의 집]→백구[일본군의 점령지, 작품 속 천인당약방]→근거지[항일 연군 임시 병원]'의 순서로 공간적 배경을 설정하여, 동북 지역에서 일어나는 항일 전쟁의 실상을 교차하여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공간 이동과 배치는 항일 전쟁의 다양한 양태를 살피고 이해하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후의 장면 전개에서도 백구인 천인당약방은 제5의 공간적 배경으로, 근거지인 산속 동굴[이동한 항일 연군 임시 병원]은 제7장의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되고 있다. 나머지 4·6·8장은 일본군 ‘헌병대’로 설정되는데, 이 역시 백구에 해당한다. 「장백의 아들」은 총 8장 가운데 백구가 5장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도 후반부로 갈수록 백구의 도입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1936년에서 1937년으로 이동하면서 항일 전쟁의 기세가 항일 연군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장백의 아들」의 도입부는 쫓기는 항일 연군 전사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박철은 일제 경찰의 추격대에 쫓기다가, 민간인인 지씨의 집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박철의 뒤를 따라 형사들이 들이닥친다. 이때 박철이 숨어든 집의 주인 지씨의 대응 방식이 주목된다.
지씨는 장성한 딸을 둔 어머니로, 시골 촌로의 행색을 하고 있다. 그녀는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기지를 갖추고 있지도 못하다. 하지만 그녀는 박철을 숨겨주기로 작정한다.
박철은 민간인들의 협조로 적지 잠입에 성공하여 부상당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며, 민간인들의 비호 아래 모종의 작전을 수행할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의 기밀 문서와 주요 정보를 빼돌려 자신의 유격대가 능동적으로 작전을 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자신이 존경하는 왕정위의 부대가 궤멸되지 않도록, 적정에 대한 정보를 탈취하여 유격대로 보내준다.
이 작품 3장의 공간적 배경은 왕정위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지트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이 아지트에서 적의 공격을 방호하고 있는 왕정위 부대가 전면에 부각된다. ‘꼬마 전사’, ‘이원길’, ‘양동무’는 적의 침입에 맞서며 아군이 퇴각할 시간을 벌고 있다. 특히 양동무와 꼬마 전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적군의 저지에 나섰다. 이 전투를 치르면서 꼬마 전사는 장렬히 사망한다. 이러한 꼬마 전사의 죽음은 작품의 비장미를 북돋우고, 1930년대 격렬했던 항일 무장 투쟁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평화 시기라면 학업에 정진해야 할 어린아이마저 항일 무장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참혹한 진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박철은 민중 혁명의 일환으로 파업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적의 심장[백구]에 잠입하여 정보와 약품과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는 첩자 임무를 맡는다. 왜냐하면 193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동북 3성에서 공산주의 민중 공조 정책이 항일 투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박철은 한 가지 임무를 더 수행해야 했다.
그것은 공산당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고 있는 민중 세력[농민 계층]의 교화와 선동 작업이다. 박철은 ‘정봉녀’를 하수인으로 삼아서 약품을 전달하다가 정봉녀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는 위기를 경험한다. 하지만 정봉녀를 위험에서 구해내며, 위기를 모면하고, 정봉녀에게 구은지명을 베푼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보여주어, 정봉녀로 하여금 혁명가에 대한 존경을 품도록 만든다. 박철의 신념과 용기는 정봉녀를 감화시키고, 결국에는 죽음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공산화의 의지를 심어준다. 박철은 신분이 탄로 나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만, 정봉녀를 비롯한 공산 주의자들이 새 시대와 새 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지를 충만한 채로 마무리된다.
「장백의 아들」의 도입부는 연약한 여성이 용감한 행동과 순간적 기지로 항일 연군 전사의 생명을 구하는 서사 유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또한 항일 연군으로 대표되는 만주 항일 유격대와 동북 3성 지역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주 항일 유격대는 동북 3성민의 지원을 절대적으로 갈구했고, 그러한 입장이 도입부에 용해되어 표현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장백의 아들」의 도입부는 당시 동북지역에 떠돌던 서사와 주변 정세를 반영하여 희곡적으로 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장백의 아들」의 서사 설정에도 민족 간 공조 대응 형태의 서사 유형[민중 협의 두 번째 유형]이 활용되고 있다. 극중에서 박철이 소속된 항일 연군의 지도자는 왕정위로 설정되었는데, 왕정위는 한인이 아닌 한족(漢族) 출신 영웅이다. 항일 연군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한인이지만, 한족 출신 왕정위는 한인의 수장으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뛰어난 영도력과 영민한 작전 수행 능력으로 당시 동북지역의 민간에서는 영웅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장백의 아들」에서도 왕정위는 중한 상처에도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는 대장부이자, 민중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신념 어린 혁명주의자로 그려져 있다.
김기형은 「장백의 아들」을 ‘농후한 극성과 엄밀한 짜임새’를 갖춘 작품으로 평가했고, 권철과 정룡은 이 작품을 “항일 시기의 역사적 현실과 치열하고도 복잡 다단한 지하 투쟁을 에워싸고 산생된 사건과 다각적 인간 관계 등을 통해 당시의 현실을 비교적 폭넓게 반영”한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김흠은 황봉룡이 ‘예술적 현념 조성에서 모범을 보이는 극작가’라고 상찬했으며, 그 실례로 「장백의 아들」의 도입부를 거론했다. 독자나 관객들은 주인공의 운명과 서사의 끝을 궁금해 하고 기대를 하게 마련인데, 이것이 김흠이 말하는 ‘예술적 현념’이라는 것이다.
김운일은 중국 조선족 연극사를 정리하면서 「장백의 아들」을 중요한 작품으로 간주하고, 비교적 상세하게 작품의 줄거리와 특징을 소개했다. 김운일은 이 작품의 주인공 박철이 “백절 불굴의 혁명 투쟁 정신과 자기 희생 정신을 갖춘 항일 투사의 전형”이라고 지목하고, 이러한 박철로 인해 이 작품은 ‘혁명적 낭만 주의 창작 원칙’과 ‘혁명적 사실주의 원칙’이 유기적으로 결부된 작품이 될 수 있었다고 정리했다.
한국의 연구자 김재석은 황봉룡의 작품 세계를 네 시기로 구분하였고, 그 중 두 번째 시기인 ‘대약진운동기’(1958~1966)에 「장백의 아들」을 포함시켰다. 김재석은 「장백의 아들」에서 박철이 ‘혁명적 이상’을 지닌 인물로 그려졌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