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싸우는 密林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 지역 | 길림성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장막극 |
|---|---|
| 작가 | 까마귀 |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938년 이른 봄 추정(1930년대) |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86년 |
필명이 ‘까마귀’로 알려진 한인[조선족] 작가에 의해 창작된 장막극.
「싸우는 밀림」은 1930년대~40년대 동북 항일 무장 투쟁터에서 공연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곡이다. 1959년 무렵 필사본 형태로 발굴되어 『문학과 예술』(1986년 제2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싸우는 밀림」은 1938년 봄에 발표된 5장의 장막극 작품이다.
작품의 작자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는 ‘까마귀’라는 필명을 쓰는 이로 통칭되고 있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항일 연군의 홍두산 밀영, 산골 마을, 일본군 중위의 처소이다. 이러한 공간적 배경이 교차하며 당시 시대적 배경을 형상화하고 있다.
「싸우는 밀림」에는 북간도 일대의 지명과 특수 용어, 실제 인물과 실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주변 근거를 바탕으로 이 작품의 서사적 배경이 백두산 근처의 흑할자구(黑瞎子沟)의 홍두산 밀영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한인[조선족]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권철은 「싸우는 밀림」의 발굴에 대해 “근년에 나는 다시 연구 사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책장을 정리하다가 뜻밖에 전에 필사해두었던 1930년대의 장막극 「싸우는 밀림」을 찾아내게 되였다. 이 글의 원본[필사본]은 ‘조선족 문학자료 수집조’의 동무들이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현에서 수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원본은 없어진지 오래고 퍽 구석진 데 박혀 있은 탓으로 재액을 면한 이 책 필사본 때문에 「싸우는 밀림」이 오늘 다시 볕을 보게 된 것이다”고 소개한 바 있다.
또한 1994년 판본 『중국 조선 민족 문화사 대계(3)』은 ‘예술사’ 편으로 되었는데, 해당 저서에서 두 극본의 출처를 이렇게 기록한 바 있다. “「혈해 지창」과 「싸우는 밀림」도 연변대학 조문 학부 1960년도 졸업생들이 졸업 논문을 준비하려고 사회조사를 하는 가운데서 1959년에 찾아낸 것인데, 그것도 연필로 쓴 필사본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당년 연변대학 조문 학부 교원이고 학생 조사조 직접 파견자인 권철은 「싸우는 밀림」의 출처가 밀산현이고, 박두렬 학생의 형님에게서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리함은 「싸우는 밀림」뿐만 아니라 「혈해 지창」의 작가를 리동백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작품이 항일 연군 2군 6사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그 지휘자가 리동백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1939년 5월 이후 항일 연군 제1로군 제2방면군으로 개편된 2군 6사는 장백현에서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무산지구에 진출하였다가 두만강 상류에서 두만강을 건너 화룡현 일대에 진출하였다. 이 시기에 두 극본 필사본이 화룡현의 민간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 “화룡현의 해당 자료를 보면 리동백은 확실히 제6사 사부에서 비서 공작을 했는데 그의 아내는 1935년 가을 안도현 처창즈 근거지가 해산된 후 조직의 지시로 안도현 이도백하 방면에서 귀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투지와 발굴지가 모두 포함되는 경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리함은 「싸우는 밀림」의 작자가 리동백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싸우는 밀림」은 「혈해 지창」과 함께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선족 창작 희곡의 최초 기점이 되는 작품으로, 조선족 연극사에서 크게 주목되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