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문시 문화관

한자 圖門市 文化館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지명/시설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도문시 정부 산하 군중 문화 사업 기관
면적 3,860㎡
전화 0433-3669-202
홈페이지 www.tumenriver.org
개관|개장 시기/일시 1949년 5월 15일
개칭 시기/일시 1956년 9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2년
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정의

길림성(吉林省) 도문시(圖們市)에 설립된 군중 문화 사업 기관.

개설

도문시 문화관의 전신은 도문시 대중 도서관이다. 1949년 5월 15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 대중적인 문화 운동을 통해 중국 한인[조선족] 문화를 고양하고 향토 문화의 보존, 전승과 진흥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건립 경위

도문시 문화관은 설립되면서 당시 국가 중심 사업의 방향에 따라 시사 정책 선전, 문맹 퇴치 운동, 문화 야학 교육 진행, 과외 문예 공연 그리고 도서 열람 활동 등의 주요 과업을 수행했다. 동시에 도시 구역 내에서 민족 문화 전통을 이어가면서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향토 문화를 보존, 진흥시키는 등 제반 사업을 전면적으로 펼쳐나갔다.

변천

도문시 문화관의 전신은 도문시 대중 도서관이다. 1949년 5월 15일 도문시 인민 문화관이 설립되었다. 당시 편제는 3명이었다.

1956년 9월 도문시가 연길현에 귀속되면서 연길현 도문진 문화 분관으로 개칭되고, 편제가 4명으로 변화되었다. 1959년 정치적인 영향으로 문화관이 폐쇄되고, 대부분이 농촌으로 하방(下枋)되었다. 1965년 도문진 문화 분관은 도문시 문화관으로 개칭되고, 편제는 5명이었다. 1968년 도문시 문화관은 신화 서점, 영화원과 합병되어 모택동 사상 선전소로 되고 혁명위원회를 설립하였다.

1970년 상반기에는 모택동 사상 선전소를 철폐하고, 도문시 문화관을 회복하여 도문시 혁명위원회 정치부 문화조의 지시를 받았다. 1986년 도서관이 분리되어 나갔다. 1993년 3월에는 도문시 가무단과 합병하고 도문시 군중 문화 예술관을 설립하였다. 1997년 5월에는 도문시 문화관으로 개칭하였다.

1975년 도문시 문화관은 새로운 청사에 입주하였는데, 건축 면적은 625㎡에 달하였다. 1985년 문화관의 편제 19명이며, 1987년 5월 도문시 문화관은 고급 사업 단위로 되고, 1988년 4월부터는 부과급 대우를 향수하였다.

1993년 3월 도문시 가무단과 합병하고 도문시 군중 문화 예술관을 설립하여 원 가무단 청사를 이전하고, 편제 50명으로 확정하였다. 2009년 2월 도문시 창작실과 합병하여 동년 9월에 도문시 가무단 현판을 더 달았다. 2011년 도문시 문화관의 새 청사가 두만강변에 우뚝 섰다. 건축 면적은 3,860㎡, 국가 1급 문화관으로 승격하였다. 내부 부서로는 무형 문화재 관리 판공실, 조사 연구 당안 판공실, 종합 예술부, 미술 촬영 녹음부, 무용부 등이 있다.

활동사항

도문시 문화관은 새로운 역사 시기를 맞으면서 군중 문예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자치주 창립 30돌 축제를 상호 협조하에 훌륭하게 거행하였다. 동북 3성 조선족 음악 무용 콩쿠르를 진행하였다. 전국 부분적 성[시], 자치구 조선족 소아동 예술축제 등 대형 행사도 무난하게 치뤄 도문시의 지명도를 크게 높였다. 1994년에는 중국 변경 문화 주랑 도문 현장 회의 과업을 출중하게 수행하였다.

도문시 문화관은 대중적 문예 창작 활동도 줄기차게 펼쳐 수많은 명작들을 출품시켰다. 1930년대에 저명한 소설가 김창걸이 「임야」 등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였고, 1940년 시인 이욱의 「북두성」, 「5월의 붉은 마음」 등 명시들이 창작되었다.

1958년 연길현에 합병된 상황에서도 『해란강』, 『진달래』 등의 문학지들이 나왔다. 1979년에 두만강 문학사, 도문 일출 시회, 월청향 청년 문학사, 석현 문학사 등 문학 단체들이 대량 발족되어 대중적 문화 창작 붐을 형성하였다. 소설가 최국철의 소설 「혼례 변주곡」, 「봄날의 장례」는 당대의 대표작중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도문시 문화관은 대중적 음악 창작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룩하면서 수많은 명곡들이 나왔다. 항일 전쟁의 처절한 나날에 창작된 「눈물 젖은 두만강」은 오늘도 그 여운이 세인을 감동시킨다. 1950년대에는 이종산, 고파, 김창복 등의 유명한 작곡가들이 탄생하였다.

도문시는 한인[조선족] 전통 무용의 고향이기도 하다. 「탈춤」, 「부채춤」이 널리 보급되었고, 특히 「장고춤」은 『세계 기네스 기록』에 오르고, 국가급 무형 문화재로 등재되면서 도문시는 ‘장고춤의 고향’으로 명명되기도 하였다.

현황

2011년 도문시 문화관두만강변에 건축 면적이 3,860㎡에 달하는 새로운 청사를 건설하고 입주하면서 국가 1급 문화관으로 승격하였다. 내부에는 무형 문화재 관리 판공실, 조사 연구 당안 판공실, 종합 예술부, 미술 촬영 녹음부, 무용부 등의 부서들이 설치되었다.

2005년에는 도문시 개설 40돌 기념 행사도 훌륭하게 펼쳤다. 2007년 두만강 문화 관광 축제, 2008년 화인컵 두만강 투우절 축제, 2009년 제3기 두만강 문화 관광 축제, 2010년 7월 23일 ‘연변의 여름’ 두만강 문화 관광 축제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2011년 두만강 문화 관광 축제와 제3기 중국 성도 국제 무형 문화재의 날 행사에도 참가하여 도문시의 저력을 크게 과시하였다.

1992년 도문시 문화관은 국가 문화부로 부터 전국 소아 예술 교육 선진 집단으로 명명되고, 이어 ‘전국 표준화 문화관’으로 평가되었다. 1999년에는 ‘농촌 문화 사업 선진 집단’으로 평가되었다.

참고문헌
  • 도문시, 『도문시 지방지』(1985)
  • 도문시문화관, 『연변 문화지』
  • 김청수, 『길림 신문』(2013. 8. 18)
  • 인터뷰(두만강 축제 예술 총감독 김아인, 201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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