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抗日 鬪士 黃炳吉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전승 실화 |
|---|---|
| 주요등장인물 | 황병길|최재형 |
| 모티프유형 | 을사조약과 항일 투쟁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4년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5년 11월 18일 |
| 관련 지명 | 북한함경북도 경원군 |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집안시(集安市)에서 ‘항일 투사 황병길’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실화.
1905년 11월 18일 조선이 을사조약을 맺게 되자 스무 살 나이의 황병길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고향인 함경북도 경원군을 떠나 아버지와 러시아의 연해주 한인촌에 자리를 잡았다. 황병길은 블라디보스톡과 아르죰 그리고 노오끼옙스크 등에 거주하는 조선인 애국자들과 저명 인사을 찾아다니면서 항일을 호소했다. 이후 황병길은 노오끼옙스크에 있는 이범윤을 찾아가 그가 인솔하는 산포수 단체에 참가한다. 그러나 산포수 단체의 항일 운동 범위가 너무 좁다고 생각한 황병길은 국경을 넘어 청나라 땅에도 항일 세력을 키워야겠다고 결심하고 혼춘벌의 동남쪽 변경의 연통라자 서골에 와 자리를 잡았다.
황병길은 항일 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무장을 위하여 부호인 최재형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최재형은 황병길의 뜻을 알고 돕기로 했다. 황병길은 최재형을 통해 안중근, 엄인섭 등을 알게 되고 의병대에 참가했다. 그 후 황병길은 두만강을 건너 조선에 출입하면서 일본군 수비대와의 싸움에서 용맹을 떨쳤다. 그리고 1920년 초여름 황병길은 수하를 데리고 러시아의 연해주로 건너가 최재형을 만나 무기와 탄약을 얻게 된다. 그러나 혼춘으로 돌아오던 중 중병을 얻어 마적달 뒤의 골 안에 사는 한 농민의 집에서 세상을 달리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겨우 35세였다.
「항일 투사 황병길」의 모티브는 ‘을사조약과 항일 투쟁’이다. 황병길은 을사조약의 불합리성에 분노를 느끼고 연해주로 망명하여 항일 운동에 참여한다. 그의 나이 20살이었다. 이후 35살에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항일 운동을 전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