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東砲隊와 西砲隊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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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오대징|보스또니|아이구스뜨|영련 |
| 모티프유형 | 동포대와 서포대의 구축과 방어|동포대와 서포대의 몰락과 혼춘성 함락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4년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혼춘시(琿春市)에서 동포대와 서포대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중국 간 벌어졌던 전투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전설.
「동포대와 서포대」 전설은 18세기 말에 제정(帝政) 러시아와 중국 간 국경 분쟁으로 혼춘시에서 벌어졌던 전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는 실화에 더욱 가깝다. 이 전설을 통해 동포대와 서포대의 구축과 방어, 그리고 동포대와 서포대의 몰락과 혼춘성 함락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혼춘하의 남쪽에는 100여 년 전에 진흙을 다져 견고하게 만들어 달걀같이 둥근 모양으로 된 ‘동포대’와 ‘서포대’가 서 있다. 제정 러시아가 침략해 오던 청나라 때, 길림 변무독판(邊務督辦)이었던 오대징(吳大澂)은 혼춘 땅을 돌아본 뒤 청나라 황제에게 상소를 올리고 이곳에 포대를 쌓기로 했다. 청조 광서 7년에 시작한 동포대와 서포대 구축 공사는 10년의 세월이 걸려 광서 16년에 완공됐다. 포대를 쌓고 포체의 무게가 무려 36톤이 되는 독일제 크루크포를 사다가 동포대와 서포대에 각각 3문씩을 걸어놓으니 그 위용이 용맹하기 짝이 없었다.
두 포대의 병사들은 제정 러시아 군대가 혼춘 땅으로 침범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 보초를 섰다. 그러던 어느 해 7월 말 새벽, 짜리 로씨야의 연해지구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이구스뜨 부사령관 밑에 보스또니 중좌의 선두 기병대가 감시 병영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혼춘성을 점령하려고 시도했으나, 동포대와 서포대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보스또니 중좌는 큰 공적을 세우기 위하여 부대를 둘로 나누어 동포대와 서포대로 진격했다. 이에 포장은 서둘러 명령을 내리고 서포대의 포탄을 적의 중심부에 터뜨렸고, 뒤이어 동포대의 포탄도 적의 무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들은 많은 희생을 내고 연자산 쪽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아이구스뜨 부사령관이 거느린 군대가 합류하여 새로운 전열을 형성했다. 사태의 위급함을 파악한 포장은 혼춘성에 지원병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혼춘성의 총지휘관인 영련은 그 사람됨이 변변치 못한 탓에 첫 방의 대포 소리에 놀라 이미 도망을 쳤기 때문에 지원병을 보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혼춘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러시아 군대는 이번 전투에서 죽은 군사들의 복수를 위해 혼춘성 백성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민가에 불을 질러 황폐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혼춘벌에 서 있는 동포대와 서포대의 흙 둔덕은 그때의 공격으로 모양이 온전하지는 않다. 다만 위엄을 떨치던 옛날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다.
「동포대와 서포대」 전설의 모티브는 ‘동포대와 서포대의 구축과 방어’, ‘동포대와 서포대의 몰락과 혼춘성 함락’이다. 청나라는 러시아의 혼춘성 공략에 대비해 동포대와 서포대를 구축한다. 하지만 혼춘성의 총지휘관이 도망가는 바람에 지원군을 기다리다가 동포대와 서포대가 무너지고, 무고한 백성들이 도륙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