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동」

한자 太平洞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지명 전설
주요등장인물 사나이|마을사람
모티프유형 호랑이 머리 자리와 얼굴 자리 마을의 액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8년 6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혼춘시(琿春市)에서 ‘태평동(太平洞)’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지명 설화.

개설

「태평동」은 ‘태평동’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자, 풍수의 사상이 근간에 깔려 있는 풍수 전설(風水傳說)이다. 호랑이의 머리 자리와 얼굴 자리에 있는 두 마을의 액운을 비교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8년 6월 한정춘이 혼춘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한진식으로부터 채록했다. 채록자 한정춘은 1953년 길림성 혼춘시에서 출생한 문학가로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태평동」 설화는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혼춘하 유역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태평동두만강으로 흘러드는 혼춘하 북쪽의 깊숙한 산골짜기 마을 이름이다. 이곳이 태평동이라 불리게 된 연유에 관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다. 호랑이처럼 생긴 낮은 산언덕에 칠호동(七戶洞)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이름은 언덕의 여섯 가구와 산 아래 한 가구를 통틀어 일곱 호가 산다고 하여 붙여졌다. 그런데 산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극심한 재난을 겪으면서 살아야만 했다. 밤중에 호랑이나 맹수들이 내려와 소와 돼지를 물고 가는 일이 다반사였고, 때론 도적 떼가 달려들어 돈과 재산을 털어가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반면, 산 아래 아들, 며느리와 함께 한집에서 사는 늙은 두 부부는 아무런 횡액을 당하지 않고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이 마을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산 아래 늙은 부부의 집에 와서 잠시 묵어갈 뿐 윗동네에는 아무도 얼씬하지 않았다. 마음씨가 착한 이 부부도 지나가는 길손들이 들르면 정성껏 대접하곤 했다.

어느 해 겨울이 시작하는 즈음 남루한 옷차림에 지팡이를 짚은 허름한 길손이 이 부부 집에 찾아 들었다. 집안에 들어온 사나이는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봉당에 쓰러졌다. 이에 착한 두 부부는 사나이를 온돌에 눕히고 살뜰히 살펴 주었다. 하루가 지나서야 사나이는 정신을 차리고 두 부부의 정성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자, 두 부부는 몸이 성할 때까지 이 집에서 묵기를 청했다. 사나이는 따뜻한 부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몸이 완쾌될 때까지 머물게 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몸을 보전한 사내는 이 칠호동 마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살기는 정말 좋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구 수가 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마을을 다 살펴본 사나이는 두 부부에게 자신이 풍수를 볼 수 있다는 것과 이 마을의 산이 울고 있음을 알렸다. 이에 부부는 마을의 남정네들을 불러다 이 사나이의 말을 경청하게 되었다. 사나이의 설명인즉, 이 마을은 매우 살기 좋은 곳인데 마을이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것이다.

이 마을의 산봉우리는 호랑이 얼굴처럼 되어 있어 이 고장에 닥치는 액운을 충분히 막아줄 수 있으나 호랑이의 머리꼭대기에 해당하는 곳에 마을이 앉아 있어 지금껏 재난을 막아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 위에 있는 가구들이 아래로 내려와 터를 잡으면 태평하게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머뭇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본 사나이는 사실 자기도 식솔들을 데리고 살 만한 좋은 고장을 찾는 중이라고 말을 하며, 이제 식구들을 데리고 와 여기서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산 위의 마을 사람들 모두가 다 이 말을 듣고 옮겨 온 것은 아니었다. 다음 해 봄에 두 집이 아랫마을로 내려왔을 뿐이었다. 산 밑에는 가뭄이 들어도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장마가 져도 농사가 잘되었으며 산이 바람을 막아주어 재해가 없었다.

그다음 해에는 풍수를 봐 주던 사나이가 이 마을로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왔고, 그해에도 큰 풍년이 들었다. 이렇듯 아랫마을이 해마다 풍년을 맞고 잘 사는 것을 지켜본 나머지 윗마을 사람들도 자연히 산 아래로 차례차례 옮겨오게 되었다. 이 마을은 연신 풍년이 들었고, 다른 마을이 도적떼로 고통을 겪을 때도 무사했다. 그때부터 산이 우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니 오붓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마을을 ‘태평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태평동」의 모티브는 ‘호랑이 머리 자리와 얼굴 자리 마을의 액운’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마을이나 가정의 잘 되고 못 됨은 그 위치하고 있는 자리 때문이라는 풍수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태평동」 설화에서도 비록 인근에 붙어 있는 두 마을이지만, 호랑이의 머리 자리에 있는 마을은 액운이 늘 닥치는 반면, 호랑이 얼굴 자리에 있는 마을은 액운이 비껴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 문학 대계』(한국학 중앙 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혼춘하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