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太平洞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지명 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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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사나이|마을사람 |
| 모티프유형 | 호랑이 머리 자리와 얼굴 자리 마을의 액운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8년 6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혼춘시(琿春市)에서 ‘태평동(太平洞)’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지명 설화.
「태평동」은 ‘태평동’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자, 풍수의 사상이 근간에 깔려 있는 풍수 전설(風水傳說)이다. 호랑이의 머리 자리와 얼굴 자리에 있는 두 마을의 액운을 비교하고 있다.
태평동은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혼춘하 북쪽의 깊숙한 산골짜기 마을 이름이다. 이곳이 태평동이라 불리게 된 연유에 관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다. 호랑이처럼 생긴 낮은 산언덕에 칠호동(七戶洞)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이름은 언덕의 여섯 가구와 산 아래 한 가구를 통틀어 일곱 호가 산다고 하여 붙여졌다. 그런데 산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극심한 재난을 겪으면서 살아야만 했다. 밤중에 호랑이나 맹수들이 내려와 소와 돼지를 물고 가는 일이 다반사였고, 때론 도적 떼가 달려들어 돈과 재산을 털어가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반면, 산 아래 아들, 며느리와 함께 한집에서 사는 늙은 두 부부는 아무런 횡액을 당하지 않고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이 마을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산 아래 늙은 부부의 집에 와서 잠시 묵어갈 뿐 윗동네에는 아무도 얼씬하지 않았다. 마음씨가 착한 이 부부도 지나가는 길손들이 들르면 정성껏 대접하곤 했다.
어느 해 겨울이 시작하는 즈음 남루한 옷차림에 지팡이를 짚은 허름한 길손이 이 부부 집에 찾아 들었다. 집안에 들어온 사나이는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봉당에 쓰러졌다. 이에 착한 두 부부는 사나이를 온돌에 눕히고 살뜰히 살펴 주었다. 하루가 지나서야 사나이는 정신을 차리고 두 부부의 정성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자, 두 부부는 몸이 성할 때까지 이 집에서 묵기를 청했다. 사나이는 따뜻한 부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몸이 완쾌될 때까지 머물게 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몸을 보전한 사내는 이 칠호동 마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살기는 정말 좋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구 수가 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마을을 다 살펴본 사나이는 두 부부에게 자신이 풍수를 볼 수 있다는 것과 이 마을의 산이 울고 있음을 알렸다. 이에 부부는 마을의 남정네들을 불러다 이 사나이의 말을 경청하게 되었다. 사나이의 설명인즉, 이 마을은 매우 살기 좋은 곳인데 마을이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것이다.
이 마을의 산봉우리는 호랑이 얼굴처럼 되어 있어 이 고장에 닥치는 액운을 충분히 막아줄 수 있으나 호랑이의 머리꼭대기에 해당하는 곳에 마을이 앉아 있어 지금껏 재난을 막아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 위에 있는 가구들이 아래로 내려와 터를 잡으면 태평하게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머뭇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본 사나이는 사실 자기도 식솔들을 데리고 살 만한 좋은 고장을 찾는 중이라고 말을 하며, 이제 식구들을 데리고 와 여기서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산 위의 마을 사람들 모두가 다 이 말을 듣고 옮겨 온 것은 아니었다. 다음 해 봄에 두 집이 아랫마을로 내려왔을 뿐이었다. 산 밑에는 가뭄이 들어도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장마가 져도 농사가 잘되었으며 산이 바람을 막아주어 재해가 없었다.
그다음 해에는 풍수를 봐 주던 사나이가 이 마을로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왔고, 그해에도 큰 풍년이 들었다. 이렇듯 아랫마을이 해마다 풍년을 맞고 잘 사는 것을 지켜본 나머지 윗마을 사람들도 자연히 산 아래로 차례차례 옮겨오게 되었다. 이 마을은 연신 풍년이 들었고, 다른 마을이 도적떼로 고통을 겪을 때도 무사했다. 그때부터 산이 우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니 오붓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마을을 ‘태평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태평동」의 모티브는 ‘호랑이 머리 자리와 얼굴 자리 마을의 액운’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마을이나 가정의 잘 되고 못 됨은 그 위치하고 있는 자리 때문이라는 풍수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태평동」 설화에서도 비록 인근에 붙어 있는 두 마을이지만, 호랑이의 머리 자리에 있는 마을은 액운이 늘 닥치는 반면, 호랑이 얼굴 자리에 있는 마을은 액운이 비껴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