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북적거리 由來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지명 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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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등장인물 | 천장사|억석이|땅쇠|관원|도둑 |
| 모티프유형 | 금덩이의 발견과 사람들의 북적임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0년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길림성(吉林省) 혼춘시(琿春市)에서 ‘북적거리’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지명 설화.
「북적거리 유래」는 ‘북적거리’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북적거리 유래」는 한때 ‘노다지’를 벌기 위해 금을 캐러 다니는 무리가 북적였다가 모두 떠나고 이제는 황폐한 수풀만 남아 있다는 내용이다.
혼춘하 중류에 ‘북적거리 터’가 남아 있다. 먼 옛날, 이곳은 금이 나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곳은 본래 산골짜기에 불과했지만, 큰물이 지고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금덩어리들이 밀려 내려왔다. 그리고 어느 밤에 천장사가 밤길을 가던 중 우연히 큰 금덩이를 발견하고 부자가 되었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금을 얻기 위하여 패를 이루어 이곳으로 흘러들었고 자연히 마을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 무리 중에서도 억석이 패와 땅쇠 패가 유명했다.
둘은 호형호제하며 금을 발견하러 다녔고, 그중에 억석이가 아이 손만큼 되는 금을 줍게 되었다. 주운 금을 구경시키던 중 금의 절반이 없어지고, 억석이는 땅쇠의 소행으로 알고 괘씸히 여겼다. 땅쇠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억석이에게 섭섭함을 표현했다.
그러나 얼마 후 다른 짝패가 금덩이를 주웠고, 그 금덩이가 억쇠 금덩이의 잘려진 금과 일치하는 것을 알고 땅쇠에 대한 생각이 오해임이 드러났다. 이후로는 서로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고 다들 금을 주워 부자가 되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점점 부자가 되는 사람이 많고 고을은 나날이 커지니, 그 소문이 널리 퍼져 도적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도적들은 밤을 타 금을 훔치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북적거리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관청에 가 청원했지만, 관청에서는 도적들을 소탕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금을 캐는 일이 불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억석이와 금점판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지만, 삶의 터전을 버릴 수 없어 금 캐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도적들의 노략질은 더욱 심해져 인명을 해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또한 관청에서도 군사를 내려보내 사사로이 캐낸 금들을 모두 빼앗기 시작했다.
결국 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사람들은 야반도주를 하기도 하고 도적의 해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며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마을은 차츰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금을 캐기 위해 한때 북적였던 이곳은 ‘북적거리’라는 이름만 있고, 이제는 황폐한 수풀만 남아 있다.
「북적거리 유래」의 모티브는 ‘금덩이의 발견과 사람들의 북적임’이다. 주요 인물로서 억석이, 땅쇠 등 노다지를 벌기 위해 금을 캐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에 의한 사건의 진행보다 오히려 그들과 같이 금을 캐러 모여든 사람들, 금을 훔치려 모여든 도둑들, 금을 빼앗으려는 관원들이 한데 모여 북적거렸다는 것이 더욱 주요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결국 ‘북적거리’라는 지명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