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갈이 늪」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마적달향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지명 전설
주요등장인물 노부부|쇠동이|점쟁이|무당|스님
모티프유형 노부부의 득남과 귀동자의 죽음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1년 10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마적달향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마적달향에서 ‘사흘갈이 늪’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지명 설화.

개설

「사흘갈이 늪」은 ‘사흘갈이 늪’의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지명 전설(地名傳說)이다. 노부부가 귀동자를 낳고 애지중지 키우지만, 어느 날 귀동자가 사라진다. 노부부는 점쟁이, 무당, 스님에게 찾아 아들을 찾아달라고 하나, 아들의 소식을 알 길이 없고, 결국 독수리에게 잡아먹혔음을 자라로부터 전해 듣는다. 노부부의 한이 하늘에 전해진 것인지 비가 몰아쳐 늪이 사흘갈이 정도의 규모로 불어난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10월 한정춘이 혼춘시 마적달향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박인숙에게서 채록했다. 채록자 한정춘은 1953년 길림성 혼춘시에서 출생한 문학가로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과 연변인민출판사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흘갈이 늪」 지명 설화는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혼춘하 유역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마적달 벼랑 아래에 ‘사흘갈이 늪’이 있다. 먼 옛날, 이곳에 마음씨 착한 부부가 살았는데 늦도록 자식이 없었다가 겨우 아들을 낳았다. 부부는 아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쇠동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어느 저녁 쇠동이가 집으로 들어오지 않자 두 부부는 불길한 예감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찾으러 다녔으나 아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때 모래톱에서 자라 한 마리가 나와 농부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자라는 얼마 전에 농부 때문에 목숨을 건진 적이 있었다. 자라는 쇠동이가 없어졌다는 농부의 말에 퍼뜩 지난해 앞집 복돌 애비를 찾기 위해 복돌 애미가 점을 쳤다는 것이 떠올라 농부의 아내에게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쳐보라고 권유했다.

부부는 은전을 푼푼이 들고 점쟁이에게 가서 아들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자 점쟁이는 점을 치고 아들이 아직은 살아 있으나 목숨이 겨우 붙어 있고, 가시덤불 밑에 신음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확한 곳을 알지는 못했다.

그때 농부는 처가댁의 무당 할멈이 동네 애를 구했던 것이 떠올라 무당 할멈을 집으로 청해 굿을 했다. 할멈은 한참 굿을 하더니 이 집에 객사한 조상 한 분이 계시는데, 그 묘가 개천가에 있는 탓에 물의 해를 입어 노여워진 조상의 혼령이 쇠동이를 잡아간 것이라고 했다. 부부가 방편을 물으니 무당 할멈은 쌀 석 섬을 올리고 분묘를 찾아 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부부는 무당 할멈의 말대로 한 뒤 쇠동이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쇠동이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부부는 이번엔 절에서 불공을 드리기로 했다. 절에 가서 관세음보살상과 문수보살상 앞에 불공을 드리고 있으니, 스님이 나와 자초지종을 물었다. 두 부부는 그간의 일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스님은 집에 불단을 세우고 아이의 옷을 흔들며, 동남쪽에 절을 올리면 객사한 조상의 묘를 알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두 부부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신령과 여러 보살님이 아들을 찾아 줄 것만을 기원했다.

절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두 부부는 벼랑 위의 수풀이 흔들리는 것을 보자 몽둥이를 들고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모래톱의 자라와 백 년 묵은 독수리가 물고 뜯으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농부는 당장 자라를 구해주고 싶었지만 한 몸으로 엉켜 있어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때 농부가 지혜롭게도 자라와 독수리를 힘껏 떠밀어 늪 속으로 처넣었다.

자라는 늪 속으로 독수리를 끌어당기며, 독수리가 쇠동이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농부에게 알렸다. 독수리는 일전에 자신이 자라를 잡아먹으려 하자 농부에게 화를 당했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서 쇠동이를 잡아먹은 것이었다. 자라는 살려고 버둥거리는 독수리를 기어이 늪 속으로 끌어당겨 쇠동이의 복수를 해주었다.

두 부부는 쇠동이가 죽은 것을 알고 통곡했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의 재물만 가로챈 점쟁이, 무당, 스님을 원망했고, 쇠동이와 두 부부의 사정에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하늘에서 먹장구름이 몰려와 큰비가 내렸고, 늪이 마구 불어나 커지는 바람에 사흘갈이 만큼 커졌다. 그리하여 이 늪을 ‘사흘갈이 늪’이라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사흘갈이 늪」의 모티브는 ‘노부부의 득남과 귀동자의 죽음’이다. 노부부는 늦둥이 귀동자에게 ‘쇠동이’라는 이름을 지어 장수하기를 바라지만, 쇠동이가 독수리에게 잡아먹혔다는 사실을 자라로부터 전해 듣는다. 자라는 노부부 덕으로 목숨을 부지한 경험이 있어, 그 은혜를 갚을 양으로 독수리와 한데 얽혀 늪에 빠진다.

인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동물이 다시 보은하는 유형의 전설들이 한국이든 중국이든 한민족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데, 「사흘갈이 늪」도 이러한 동물보은형(動物報恩形)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한국 구비 문학 대계』(한국학 중앙 연구원, 198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 한정춘, 『혼춘하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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