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마적달향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지명 설화 |
|---|---|
| 주요등장인물 | 박교감|처녀 |
| 모티프유형 | 박조감의 의술과 지혜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78년 1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길림성(吉林省) 혼춘시(琿春市) 마적달향(馬滴達鄕)에서 ‘박조감 터’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지명 설화.
1978년 1월 한정춘이 혼춘시 마적달향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박인숙에게서 채록했다. 채록자 한정춘은 1953년 길림성 혼춘시에서 출생한 문학가로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과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조감 터」 지명 설화는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혼춘하 유역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혼춘하 상류의 남쪽 언덕에 ‘흙지탕’이란 곳에 ‘박조감 터’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먼 옛날, 이곳에 ‘박교감’이라는 사람이 동리의 서쪽에 큼직한 집을 서당으로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살고 있었다.
박교감은 아이들에게 글공부를 매우 엄하게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병자를 실은 수레가 박교감의 집으로 왔다. 박교감이 병자를 보니 매우 이상스러웠다. 출가할 나이가 다 되어 가는 처녀애가 두 팔을 올린 채 서 있는데 그 팔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었다. 부모는 굿도 하고 비구니에게 약도 지어 먹여 봤지만, 효험이 없었기에 박교감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박교감은 처녀애의 이상스러운 증세를 살피고는 이 병은 침이나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박교감은 처녀의 부모에게 밖으로 나가 있을 것을 청하고, 어머니에게 방에 있는 처녀의 옷을 벗기고 속옷만 입혀 놓으라고 했다. 부모들은 진맥도 짚지 않고 병을 고치겠다는 박교감의 말에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처녀의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 딸아이의 겉옷을 벗기고 혼자 남겨 두고 밖으로 나왔다. 박교감이 처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보아하니, 처녀는 매우 수줍음을 타고 있었다. 박교감은 손에 들고 있던 싸리 막대기로 처녀의 치맛자락을 들려고 했다. 이에 처녀는 “에구머니나!”하고 소리를 지르고, 아랫도리를 가리려 두 손을 힘껏 내렸다. 이처럼 박교감은 침이나 약을 쓰지 않고도 처녀의 이상스러운 병을 단번에 고친 것이었다. 이후 박교감의 명성은 인근 마을에 자자해졌다.
그 소문을 듣고는 다음엔 한 농부가 그의 아들을 데리고 박교감을 찾아왔다. 농부의 아들은 코 한쪽에 노란 콩 한 알이 들어가 도저히 빼낼 수 없었다. 박교감이 살펴보니, 그 콩알은 코속에서 숨결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박교감은 제일 긴 침 끝을 구부려 콩알이 움직이는 틈을 타서 얼른 빼내었다. 농부와 아들은 매우 기뻐하며 박교감에게 감사해했다.
이렇게 지혜롭게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아이들의 공부도 가르치면서 은거했던 박교감의 덕행을 기려 사람들은 그가 살았던 집터를 '박교감 터'라 불렀고, 세월이 흘러 ‘박조감 터' 가 되었다.
「박조감 터」의 모티브는 ‘박교감의 의술과 지혜’이다. 박교감은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워낙에 지혜로워 일반적인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특이한 병들을 잘 고친다. 또한 마을 아이들을 위해 서당을 열고 글공부를 시킨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박교감’이라 칭하게 되고, 박교감이 살던 집터를 ‘박교감 터’라고 부른다. 후에 ‘박교감 터’가 ‘박조감 터’로 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