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 | 妙燏嶺 |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 유형 | 작품/설화 |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춘화진 |
| 시대 | 현대/현대 |
| 성격 | 설화|지명 전설 |
|---|---|
| 주요등장인물 | 노스님|노스님 제자(묘율) |
| 모티프유형 | 노스님의 의술과 어린 제자의 지혜 |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7월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 관련 지명 | 길림성 혼춘시 춘화진 |
길림성(吉林省) 혼춘시(琿春市) 춘화진(春化鎭)에서 ‘묘율령(妙燏嶺)’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지명 설화.
1990년 7월 한정춘이 혼춘시 춘화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김덕춘에게서 채록했다. 채록자 한정춘은 1953년 길림성 혼춘시에서 출생한 문학가로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과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묘율령」 지명 설화는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혼춘하 유역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혼춘시 춘화진 태평구촌(太平溝村)에서 혼춘하 상류를 거슬러 북쪽으로 수십 리 되는 곳에 기다란 고갯마루가 있다. 이를 흔히 ‘묘율령’이라고 부른다. 옛적에 이 영마루에 조그만 묘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근처에 장씨(張氏) 성을 가진 노스님이 살았다.
노스님은 의술이 고명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병을 성심껏 고쳐서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노스님은 장차 자신의 의술을 물려줄 제자를 물색하던 차에 굶주려 먹을 것을 청하는 열대여섯 살 아이를 거두게 되었다.
아이는 노스님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했고, 노스님도 아이의 총명함을 눈여겨 봐 ‘부엌돌이’라 이름 짓고 함께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노스님이 모시는 관세음보살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부엌돌이는 노스님에게 자신이 관세음보살상을 다시 찾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큰 주머니 하나와 작은 주머니 여러 개를 가지고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로 내려간 부엌돌이는 집마다 다니며 쌀 한 줌씩을 공양받고는 작은 주머니에 각각의 이름을 써 보관했다.
사람들은 부엌돌이의 행동을 의아해하며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부엌돌이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동안 노스님이 사람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관세음보살상과 미륵보살상이 치료법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상을 누가 훔쳐가 혼자 남은 미륵보살상이 동네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쌀 주머니를 모아 가져오면 도둑을 알려줄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면서 부엌돌이는 관세음보살상을 다시 가져다만 놓으면 미륵보살은 자비로우시기에 도둑을 잡지 않고 용서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새벽, 부엌돌이가 마당으로 나가 보니 놀랍게도 관세음보살상을 누군가가 되돌려 놓았다. 노스님은 글씨도 모르는 부엌돌이가 이름을 쓰는 흉내까지 내어가며 지혜롭게 이 일을 해결한 것을 듣고는 그의 됨됨이를 높이 사 ‘묘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그를 진정한 제자로 삼았다.
이후 묘율은 노스님의 의술을 열심히 배우는 한편, 정성껏 사람들을 고쳐 칭송을 받았다. 노스님은 100세가 넘어 세상을 뜨고, 묘율은 스승의 산소를 잘 돌보며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때부터 묘율의 덕을 높이 기려 묘율이 머물던 산 고갯마루를 “묘율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묘율령」의 모티브는 ‘노스님의 의술과 어린 제자의 지혜’이다. 글을 제대로 읽고 쓸 수 없던 어린 제자이지만, 지혜를 발휘해 잃어버린 관세음보살상을 되찾는다. 이때부터 노스님은 어린 제자에게 ‘묘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의술을 전수한다. 어린 제자는 노스님의 유지대로 의술을 발휘해 마을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며, 한평생을 노스님의 무덤을 지킨다. 이 설화는 한 인물의 공업(功業)을 통해 특정한 지명이 형성된 지명 전설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