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골」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송강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지명 설화
주요등장인물 왕우재|박서방
모티프유형 황금 발견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7년 8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송강현
정의

길림성 송강현에서 우재골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지명 설화

개설

「우재골」은 투도백하 근처 ‘우동’이란 마을의 작은 산골짜기의 이름 유래를 설명한 지명 설화이다. 과거 황금이 많던 시절 이곳에 왕우재란 사람이 가족과 함께 금을 캐러 와서 매일 금만 캐며 살았다. 인심이 박하고 모질던 우재를 마을 사람들은 기피하였다. 어느 가을밤 우재네 가족이 전부 도끼에 찍혀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으나 진실은 알 수 없었고, 우재네가 몇 년간 캐냈던 황금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되었다.

우재네에 대한 소문이 사라져가고 있을 무렵, 한 사나이가 우재네 앞마당을 파다 황금이 든 오지단지를 발견했다. 이 소문이 퍼져 마을 사람들이 집과 근처의 골짜기를 파헤치는 바람에 전쟁터처럼 엉망진창으로 변했으나 더는 황금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자연스럽게 ‘우재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1977년 8월 한정춘이 안도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이룡순에게서 채록했다. 채록자 한정춘은 1953년 길림성 혼춘시에서 출생한 작가로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과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우재골」 설화는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송화강 유역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투도백하 근처 ‘우동’이라는 민심이 후한 시골 마을이 있었고, 부근에는 작은 산골짜기가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이 골짜기를 ‘우재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두도백하 양안은 황금이 많이 나는지라 우재골에도 황금이 많았다. 어느 해 황금을 캐는 금점꾼들이 모였는데 네 아들을 거느린 중년에 이른 한 사내가 이 산골짜기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이들은 부지런히 금전판에서 세월을 보냈다. 근처 사람들은 매일 금만 캐는 세대주가 왕씨 성에 이름이 우재라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 그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없었다.

이 고장 사람들은 겨울에 산짐승을 잡기만 하면 다들 모여 음식을 함께 먹곤 했다. 어느 해 겨울 마음씨 착하고 견식이 넓고 사교성 있는 박서방이 노루를 사냥해서 우재네 집으로 찾아갔다. 박서방은 한마을에 사는 사이니 고기가 생겼을 때 맛이나 보라면서 고기를 우재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우재는 차갑게 타박하며 박서방을 쫓아버렸다. 박서방이 냉대를 받았다는 소식이 마을 사람에게 전해져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우재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우재에 관한 야박한 소문들만 무성하게 생겨났다.

몇 해가 지난 어느 가을 아침 웬일인지 우재네 집 굴뚝에서 아무런 연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를 여러 번 봤지만, 아무도 우재네 집에 가지 않았다. 며칠째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자, 박서방이 나서서 한번 가보자 해서 가보니 우재네 집에는 큰 참사가 발생하였다. 우재는 도끼에 맞아 머리가 끊어져 있었고, 아내를 비롯한 네 아들도 모두 도끼에 찍혀 온 집안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관청에 사실을 알렸다. 관에서 나온 사람들은 시체를 검시하고 나서 마을 사람더러 묻으라고 하고 돌아갔다. 다들 별 친분이 없는지라 꺼림칙하게 생각하여 아무도 나서지 않자, 박서방이 사람의 도의는 지키자며 몇몇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시체를 거적에다 싸서 묻어주었다.

항간에는 황금 욕심에 눈먼 누군가가 우재네 식구를 죽이고 황금을 챙겨갔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우재가 이사 오기 전 원한이 있어 앙갚음을 당한 것이라는 등의 소문도 돌았다.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황금이 몽땅 없어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우재네가 재앙을 입은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친척은 커녕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점차 네 사건은 마을 사람들에게 점차 잊혔다.

그런데 후에 괴이한 소문이 떠돌았다. 우재네가 봉변을 당한 천둥이 치고 비 오던 날 밤 웬 사나이가 우재네 집에 들어가 굶어죽게 되었으니 밥을 좀 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우재는 매몰차게 쫓아내었고, 앙심을 품은 사나이가 어디서 도끼를 얻어 들고 한밤중에 우재네 집에 다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우재네가 몇 해 동안 소처럼 일해 오며 캐낸 황금이 적지 않을 터인데, 어떻게 처분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추측도 먼 옛날의 이야기마냥 사라진 후 누군가 어쩌다 우재네 낡은 집터 앞마당을 파다가 작은 오지단지 하나를 찾았다. 그 안에는 황금이 들어있었는데, 이를 발견한 사나이는 기뻐 그만 소리를 치고 말았다. 황금이 많지 않아 근방에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마을 사람들이 집 주위와 근처 골짜기까지 파보았으나 황금을 발견할 수 없었다. 우재네가 살던 골짜기 주변은 마구 파헤쳐져 전쟁터처럼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우재가 살던 골 안을 ‘우재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에도 물욕에 눈이 어두운 어중이떠중이들이 황금단지를 찾아내려 했지만, 예외 없이 헛수고만 하고 돌아갔다.

모티프 분석

「우재골」의 모티브는 ‘황금 발견’이다.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설화를 살펴보면, 100여 년 전을 전후해서 금덩이를 발견했다거나 사금을 캤다거나 하는 등 황금과 관련한 설화들이 종종 발견된다. 실제로도 19세기 말, 청 정부는 동북 3성에 외국의 기술력을 도입하여 황금 캐는 일에 주력했다. 이 설화는 그러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형성,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황금으로 인한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재물에 대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되어 있다.

참고문헌
  • 한정춘, 『송화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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