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대 바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지명 설화
주요등장인물 오 석장|억석이
모티프유형 어느 석공의 부역과 아들의 행방불명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8년 3월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탕하 발원지 인근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안도현(安圖縣)에서 촛대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지명 설화

개설

「촛대 바위」는 탕하(湯河) 발원지 근처 바위의 명칭 유래를 설명한 설화이다. 과거 뛰어나고 부지런한 오석장(吳石匠)이 살았는데, 어느 날 관가의 부역에 동원되어 불탑과 절을 세우는 일을 하게 되었다. 3년이면 끝날 것이라 한 일이 6년이 돼서야 겨우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는 병으로 죽고 아들은 아버지를 찾으러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좌절한 오석장은 아들을 찾고자 사방을 돌아다녔으나 찾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세월이 흘러 자신은 늙어 있었다. 어느 날 꿈에 야맹증의 아들이 나타나 고향이 어두워 돌아갈 수 없으니 큰 초를 켜 달라고 하였다. 그 후부터 오석장은 아내의 무덤 동쪽 절벽 위 바위를 깎아 큰 촛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때 촛대처럼 만든 바위에 밤마다 초 심지에 불이 붙어 마을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었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78년 3월 한정춘이 안도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이영진에게서 채록했다. 채록자 한정춘은 1953년 길림성 혼춘시에서 출생한 작가로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과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초대 바위」 설화는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송화강 유역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탕하가 발원하는 곳에 신비한 촛대 바위가 있다. 여기 시골 마을에 오씨 성을 가진 석장(石匠)이 있었는데 부지런하고 손재간도 뛰어나 먼 마을까지도 소문이 났다. 반백이 훨씬 지난 그는 타 마을로 일하러 가지 않고 제자 억석이와 매일 마을 동쪽 산에 올라가 돌 바위를 깎기만 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홀로 살아가다 보니 적적하여 돌을 깨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오석장도 젊었을 때는 단란한 가정과 아들도 있었다. 돌을 다루는 재간이 뛰어나다 보니 근방의 마을에서도 돌과 관련된 일은 오석장에게 맡겼다. 오석장은 돈이나 재물을 받지 않고 일을 도와주다 보니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가 젊을 때인 어느 해 관가로부터 불탑을 세우고 절간을 짓는 부역에 뽑혀가게 되어 병으로 누운 아내와 어린 아들을 돌볼 수가 없었다. 3년이면 끝난다던 부역이 6년이 지나서야 겨우 끝났다. 부역에 동원된 사람은 일이 끝나기 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왕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오석장이 부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병으로 죽었고, 야맹증에 걸린 아들은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과 만류도 마다하고 아버지를 찾아 길을 떠난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 오석장은 슬픔이 너무 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 자살하려 했는데, 옆집 이웃이 달려와 아들이 돌아올 수도 있으니 그러면 안 된다고 만류하였다. 이후 오석장은 하염없이 아들을 기다렸다.

세월이 지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오석장은 마침내 직접 아들을 찾으러 길을 나섰다. 아들을 찾는 길에 오석장은 타향 사람들을 위해 묘소의 비석을 깎고, 마룻돌도 쪼아주었다. 절이나 사찰의 돌사자도 깎아 만들고 다듬어주며 아들의 행적을 알아보았다. 아들의 소문을 찾아 돌아다녔으나, 세월이 지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석장이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늙은 몸이 되었다.

어느 날 밤 꿈에 아들이 나타나 고향 마을이 어두워 돌아올 수 없으니 큰 촛불을 켜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놀라 잠에서 깬 오석장은 아내의 묘소 동쪽 절벽에 올라가 바위를 깎고 다듬어 큰 촛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 바위를 다듬는데 동쪽 마을에 사는 억석이가 찾아왔다. 억석이는 홀로 사는 젊은이였다. 억석이는 어느 동리의 석마 판돌을 쪼아주려 집을 나선 후 골물을 건너려다가 많이 내린 비로 상류의 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강직한 오석장은 어떻게든 골물을 건너게 해주려고 골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던 중 어디선가 구명 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가보니 한 아이가 골물에 잠겨 둥둥 떠 있었다. 오석장은 나무 장대로 그 아이를 구하고 보니, 그 아이는 바로 억석이었다.

오석장은 오갈 데 없는 억석이를 집에 데리고 와 함께 살았다. 부지런하고 세심한 모습을 보고 억석이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오석장은 이 마을을 더 밝게 비추고자 큰 촛대를 다듬는 것이라 말하며 같이 깎자고 하였다. 억석이도 오석장을 도와 열심히 돌을 깎았다. 세월이 흘러가는 줄 모르고 스승과 제자는 바위를 깎고 다듬으며 촛대를 만들어갔다.

오석장은 아들이 곁으로 돌아올 것을 바라며 바위를 깎고 또 깎았다. 억석이는 사부의 손재간을 배워가느라 세월이 흐르는 줄 몰랐다. 촛대처럼 쪼아 만든 바위에는 밤마다 초 심지에 불이 붙어 이 마을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촛대 바위」의 모티브는 ‘어느 석공의 부역과 아들의 행방불명’이다. 전통 시대에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일정한 기간 동안 노역하는 부역(賦役)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부역과 관련한 설화는 대부분 그 폐해를 그리고 있다. 이 설화에서 오석장이라는 석공이 부역을 하는 동안 그 아내는 죽고, 아들은 행방불명된다. 석공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큰 촛대 바위를 깎아 불을 환히 밝힌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간절한 그리움이 기적에 가까운 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참고문헌
  • 한정춘, 『송화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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