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씨동」

한자 宋氏洞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길림성 백산시 무송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설화|지명 설화
주요등장인물 고씨 성을 가진 도사|송씨
모티프유형 풍수 지리와 마을 터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4년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관련 지명 길림성 백산시 무송현
관련 지명 길림성 백산시 무송현
정의

길림성 백산시 무송현에서 송씨동과 도사바위굴에 관련하여 전해지는 지명 설화.

개설

「송씨동」은 송강하 상류 근처의 도사바위굴의 도사가 알려준 터에 자리 잡은 송씨동의 지명 유래를 설명한 지명 설화이다.

오래전 고씨 성을 가진 도사가 은신할 암자를 찾아 돌아다니다 신기한 버섯이 나고 물이 떨어지던 벼랑 근처에 자리 잡고 암자를 지어 학문과 의술을 닦으며 때때로 먼 곳의 민가를 찾아가 환자들을 보살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씨 성을 가진 사나이가 집을 지을만한 터를 물으러 암자로 왔다. 그는 주변을 살피다 버섯이 나는 곳을 발견하고 버섯을 먹고 떨어지는 물을 마시다 갈증이 나 물이 나오는 구멍을 몽둥이로 쑤셨다. 그러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벼랑이 터져 큰 바위굴이 생겼고,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도망갔다.

후에 도사가 그 굴을 은신처로 삼았고, 나중에 송씨가 찾아와 사죄하였다. 도사는 사죄를 받아주며 마을 터를 잡을만한 곳을 알려주었다. 훗날 이 동굴을 도사가 사는 굴이라 하여 ‘도사바위굴’이라 하였다. 송씨는 도사가 알려준 곳에 터를 잡고 친척들과 마을을 형성하였고, 이후 송씨들이 사는 곳이라 하여 ‘송씨동’이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1984년 한정춘이 무송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조선족] 김명익에게서 채록했다. 채록자 한정춘은 1953년 길림성 혼춘시에서 출생한 작가로 『연변 일보』 향토 문학상과 연변인민출판사 이영식 아동 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송씨동」 설화는 2010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발간한 『송화강 유역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압록강에 흘러드는 송강하 상류 근처 노송강이라는 마을에서 북쪽 기슭 벼랑에 바위굴이 있다. 이 바위굴은 ‘도사바위굴’이라고 불리며, 그에 관한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오래전 고씨 성을 가진 도사가 은신할 암자를 지으려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날이 저물어 잠시 쉬어 갈 곳을 찾았으나, 주변에는 은신한 마땅한 인가가 없었다. 도사는 하룻밤을 새우려 주변을 살피는데 웬 물건이 빛을 내고 있어 호기심에 다가갔더니 산토끼였다. 산토끼가 달아나고 그곳을 살펴보니 옴폭하게 파인 아늑한 자리가 있어 그곳을 잠자리로 삼아 잠을 청했다. 한밤중이 되어 소나기가 퍼부었고, 놀란 도사는 잠이 깨어 주변을 살피니 빗물이 잠자는 곳으로 들어오지 않아 신기해 여겼다.

이튿날 암자를 지을만한 터를 찾으러 주위를 살피는 도중 인근 바위 밑에 버섯이 솟아있었고 산토끼가 뜯어 먹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남은 버섯을 자신더러 먹으라고 산토끼가 남겨놓은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한 송이를 먹으니 맛도 좋고 허기도 가셨다. 여러 곳을 둘러보았던 도사는 이 벼랑 근처가 암자를 짓는 데 제일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해 이곳에 터를 잡고 암자를 세워 은거하며 살았다. 도사는 이곳에서 책을 읽고 약초를 연구하며 때때로 먼 곳의 민가들을 찾아가 환자들의 병을 봐주고 약초도 나눠주곤 했다.

어느 날 어느 마을에 사는 송씨 성을 가진 사나이가 병을 보이고자 암자를 찾아왔다. 그는 병을 보이고는 도사가 왜 이렇게 깊은 산속에 사는지 궁금하여 주변을 살펴보다 물기가 함치르르한 버섯 한 송이를 따서 먹고, 배가 차지 않아 떨어지는 물까지 손으로 받아 마셨다. 욕심이 굴뚝같은 송씨는 심한 갈증을 느낀 나머지 몽둥이를 찾아와 물이 떨어지는 구멍을 마구 쑤셨다. 그러자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송씨가 멀리 나뒹굴었고, 구멍이 크게 뚫리고 주변으로는 안개가 감돌았다. 송씨가 다가가 살펴보니 바위 가운데 동굴이 생겼는데, 어찌나 큰지 사람이 수십 명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큰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한 송씨는 도사에게 말 한마디 없이 도망치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버섯도 더는 돋지 않았고 떨어지던 물도 온데간데없어졌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도사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자신을 찾아 왔던 송씨가 한 짓이 분명하다며 한탄하고 말았다. 원래 며칠에 한 번씩 돋아나는 버섯은 몽땅 뜯어먹으면 다시 돋지 않는 신비로운 버섯이었기에 산토끼도 도사도 하루에 한 송이씩만 뜯어냈던 것이다.

벼랑 밑에 깊숙한 바위굴이 생각난 도사는 암자를 버리고 바위굴을 은신처로 삼았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달아난 송씨가 나타나 도사에게 사죄하였고, 도사는 알았다면서 마음속에 두지 말라고 하였다. 송씨는 병을 보이러 온 것이 아니라 집을 짓고 살아갈 터를 알아보려 도사를 찾아온 것이었는데 그만 실수로 달아난 것이었다.

도사는 마을이 앉을만한 자리를 송씨에게 알려주었고, 이 굴속에서 여생을 홀로 살아가며 의술을 통달해 백성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 그래서 민간에서 이 바위굴을 ‘도사바위굴’이라 부르게 되었고, 송씨들도 도사가 풍수지리를 보아준 곳에 자리 잡고 살아갔다. 송씨의 친척들까지 모여들며 수십여 호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마을이 되었고, 송씨 성을 가진 집들이었기에 ‘송씨동’이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송씨동」의 모티브는 ‘풍수 지리와 마을 터’이다. 풍수(風水)는 천지간의 기가 특정 공간의 지맥을 통해 인간의 행·불행을 결정짓는다고 여기는 민간 신앙이다. 그만큼 풍수가 우리 역사 속에 깊이 반영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마을 터와 관련한 전설인데, 전체적인 흐름이 풍수와 관계되어 있다.

참고문헌
  • 한정춘, 『송화강 유역 전설집』(연변인민출판사, 2010)
  • 『한국 민속 문학 사전』-설화편(국립 민속 박물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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